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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28 18:51 수정 : 2008.12.28 18:51

2000년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행사에 남쪽 참관단의 일행으로 참석한 필자(왼쪽)가 그해 10월13일 평양 통일거리 평양단고기집에서 55년 만에 상봉한 누나 인숙(오른쪽)씨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백기완-나의 한살매 61

누님, 아직 욱끈(건강)하시지요? 2천해 10달, ‘노동당 창당’을 기리는 날, 얼짬(잠깐) 뵈온 지가 어느덧 여덟 해, 올해 여든이시지요. 그런 누님을 쉰여섯 해 만에 만났는데 글쎄 5천 원짜리 개엿 한 덩이만 놓고 왔으니 이 기완이 오죽 답답한 놈입니까.

알로 말하면 그때 내가 노녘(북쪽)을 가리라곤 어림도 못했습니다.

“나보고 통일 가르침을 받질 않으면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야, 네놈들이 나한테 통일 가르침을 받아야지, 누가 날 가르친다는 거가?”

이때 민주노총 신현훈이 수레(차)를 끌고 와 “날터(비행장)엘 한술 가보기나 하자” 해서 간 겁니다. 거기서 개엿이 먹음직스러워 하나 샀더랬지요. 아침으로 때우려고.

그런데 얼낌에 날틀(비행기)에 타고 한 열 조금(십분) 지났을까. 여기가 노녘이라는 겁니다. 뭐, 노녘? 왈칵 온몸의 물끼가 떨기(폭포)처럼 쏟아지기 차름(시작)한 겁니다.

사람들이 묻더라구요. “노녘에서 무엇을 했으냐?” “우리 누님을 만나 그저 울기만 했다. 거리에서 대동 흘떼(강)에서 울기만 했다”고 했습니다.

누님! 제가 황철 선생님 무덤에서도 펑펑 운 건 모르시지요. 제가 열세 살 적입니다. 황 선생의 굿을 보고자 서울 어느 굿집(극장) 똥뚝을 기어올랐으나 온몸에 묻은 똥냄새 때문에 잡혀 귀싸대기를 맞느라 못 보았었지요. 그런 분을 무덤으로 만났으니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또 어떤 이가 물었습니다. “노녘에서 무얼 보았느냐?” 나는 “옛날 보던 바로 그 사람들을 보았다. 이 땅엔 남을 이겨야 산다는 욱박(강박)과 남을 제껴야 올라선다는 잔머리에 지친 이들이 많다. 그런데 노녘에서는 내가 예순 해 앞서 보던 바로 그 사람들이더라”고 하니 기세(기성)이 언니(형)가 어찌나 우시던지.

누님! 그 기세이 언니가 댓 해 앞서 돌아가셨습니다. 때살이(감옥) 열해 만에 나오시던 날, 오죽 굶었으면 이빨이 몽땅 빠졌는데도 난 꺼떡없다고 하시더니…, 돌아가시기 앞서 눈과 배알을 대학 고칠데(병원)에 주고, 나머지는 재로 건사하다가 라비(고향) 땅에 뿌려 달라! 얼마나 라비가 가고 싶었으면 그랬겠습니까.

누님! 우리 어머니 난날(생일)을 알고 계신지요? 언젠가 아버지한테 “왜 우리 어머니 난날도 모르냐”고 하니 “야 임마, 언제 난날을 차려먹었어야 알질 않어.” 그래서 누님한테 꼭 어머니 난날을 물었어야 하는 건데….

“야, 기완아.” “응.” “우리들 허리를 뚝 자른 놈들 있잖아, 그놈들을 그저 앙짱 메기자우.” 그러곤 울고, 또 그러다간 또 울었을 뿐이니.

누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앞서 담뱃값도 없는데 어머니와 누님한테 주신다고 쌀 일흔 가마 값을 모으신 거, 모르시지요. 아버지는 늘 길을 잃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어딜 가시던 길이신데요?” “나? 내 라비(고향) 구월산을 가던 길이지.” 그러셨는데 요즈음 제가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꿈만 꾸었다 하면 라비 꿈이니까요.

하지만 누님! 우리들의 라비는 옛날 삶터가 아닙니다. 통일이 바로 라비입니다. 따라서 누님과 만나는 것도 통일이 아니면 만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 통일은 요새 어찌되고 있을까요. 돈의 막심(폭력)과 싸우고 있는 또 한켠에선 돈이 온골(세계)을 통일해가고 있습니다. 돈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 그 말씀입니다. 나아가 돈의 막심이 온골을 하나씩 둘씩 통일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벗나래(세상)를 죽이고 있다 이 말입니다.

백기완
그뿐일까요. 속임손(수), 앗딱손이 온골 온 구석구석을 통일해 가고 있습니다. 갈마(역사) 그 불림(진보)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그 말입니다.

이때 우리들의 참 통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돈과 그 돈의 막심, 그 앗딱손을 까팽개치고는 사람과 누룸(자연)이 함께 고루 잘사는 벗나래(세상)를 이룩해 내는 거, 그게 통일입니다.

누님! 우리 언애(형제)들의 한나(통일)는 바로 그 싸움의 바투(현장)에서 만나는 것이오니, 누님! 그날까진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통일이 되면 무엇을 할 거냐?” “통일을 일구어 온 갈마를 더듬는 이야기꾼이 되겠다.” 나는 늘 그래왔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달라졌습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 어머니 무덤을 찾아 한바탕 실컷 우는 겁니다. 울다가 울다가 못 일어난들 그게 바로 통일이다 그거지요.

누님! 왜 이리 눈물만 펑펑 납니까. 우리 언애들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하지만 누님과 인순이와 저, 이렇게 함께 만날 그날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눈을 감으시면 안 됩니다. 참말 보고 싶습니다, 누님!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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