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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2 18:43 수정 : 2009.01.13 17:42

1954년 3월 전북대 정치학과 시절의 필자. 대학 4년 동안 필자를 한 가족으로 보살펴 준 임종엽 선생(당시 전북도의회 의장)의 집앞이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7

나는 이 연재 첫머리에서 법조인은 ‘제4 지망’이었다고 고백했다. 제1 지망이던 선생님은 사범학교 낙방으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썼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지망의 ‘증발’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겠다.

제2 지망은 방송사 아나운서였다. 그때는 라디오밖에 없을 적인데, 아나운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거기에다 그때 이미 유명해지기 시작한 임택근 아나운서가 연대(지금의 연세대)에 재학 중이면서 <한국방송>(KBS·당시 서울중앙방송)에 나간다는 말이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

마침 케이비에스에서 아나운서 모집 공고가 났다. 약간명 모집이라고 했기에 혹시나 하는 요행수까지 계산에 넣고 응시했다. 전북지역의 시험장소는 이리(지금의 익산) 방송국이었다. 시험과목은 국어와 상식, 그리고 실기였다. 국어시험에는 애국가 1절을 정확하게 써 보라는 문제도 나왔다. 두루 아는 대로 그 가사에는 몇 군데 틀리기 쉬운 곳이 있어서 감점의 함정이 있는 묘한 출제였다. 나는 필기시험은 괜찮게 쳤는데, 문제는 실기였다.

뉴스 원고를 미리 나누어주고 30분 뒤에 수험번호 차례로 부스에 들어가 마이크 앞에서 실제 상황처럼 뉴스 원고를 낭독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더듬거리지는 않고 잘 읽어 내려 갔다. 그러나 며칠 뒤 합격자 발표에 내 이름은 없었다. 단 한 사람의 합격자는 최세훈씨(문화방송(MBC) 아나운서부장 역임)였다. 시험을 마치고 전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만난 전북 문리대 학생이었다. ‘약간명 채용’이라고 해 놓고 왜 한 명만 뽑았을까? 한 명을 약간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이상, 요즘 같으면 헌법소원 감이 아닐까? 그 후 나와 친해진 최 형이 알려준 바로는, 내 필기시험 성적은 아주 좋았는데, 실기 테스트에서 점수가 낮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훗날 그 낙방에 대하여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나섰다.

“50년대에는 방송에서 꾀꼬리 같은 미성만 알아주고, 나처럼 개성 있는 허스키 보이스를 아직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떨어졌다. 요컨대 나는 시대를 잘못 만났던 것이다.”

섬세한 시인이기도 했던 최형은 얼마지 않아 서울로 올라왔고, 나는 그를 만나러 남산의 케이비에스를 드나들다가 방송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유일한 합격자와 낙방생 사이의 우정은 변함없이 지속되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는 여러 해 전에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제3 지망인 언론인에 대해서 밝혀야 할 차례다.


고등학교 때 내 학적부(생활기록부)의 ‘장래의 지망’ 난에는 ‘언론인’이라는 세 글자가 지금도 분명히 남아 있다. 고교 시절부터 나는 신문기자나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앞서의 아나운서 지망은 얼마쯤 충동적인 면이 작용했던 것 같다)

한승헌
그런데, 6·25를 겪고 대학생이 되어 세상을 보면서, 언론계의 풍토와 언론인의 행태에 실망을 하기 시작했다. 언론인이 관보 종사자 노릇을 하는 것도 그랬지만, 사회적 병폐를 증폭시키는 암적 존재로 타락해 가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 가짜 기자의 파렴치는 가짜니까 그렇다 치고라도, 일반 언론인들도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론 풍토의 그런 병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언론인이 되어 올바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그럴 능력도 결단력도 없었다. 결국 나는 직업으로서의 언론인이 되는 길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언론 지향적인 뭔가가 있었던지, 훗날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세상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글을 쓰는 변두리 논객이 되어, 칭찬과 형벌이 교차되는 양면을 두루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여러 언론 매체에 글을 쓰거나 언론인들을 변호하고, 나아가 언론기관 내지 언론인 단체, 그리고 언론인들과 오랜 인연을 유지하며 살아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해서 내가 직업으로서의 언론인 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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