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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5 18:21 수정 : 2009.01.15 21:16

서울지검 검사로 일하던 1965년 6월 어느 날, 퇴근길에 서울 서소문에 있던 청사 맞은편의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큰아들과 함께 선 필자. 석달 뒤 변호사 개업을 했으니 검사로서는 아마도 마지막 사진인 듯싶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10


나는 법무부에 근무하는 동안 장관 세 분을 모셨다. 그중 두 분은 군 법무관 출신이었고, 한 분은 대법관을 역임한 원로 법조인이었다. 어쩌다가 장차관 이·취임사 쓰는 일을 맡게 되었고, 이런저런 기념사 축사도 소관 업무와 무관하게 내 일이 되곤 했다. 장관이나 차관을 수행하여 당시의 최고 권부이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가기도 하였는데, 대개는 브리핑 차트나 보고 관련 문서를 챙겨 들고 따라갔다.

서울 세종로(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자리)에 있던 최고회의에 가면, 5·16 쿠데타의 주역이던 장교들을 회의장에서 볼 수 있었다. 현역 군인 20여명이 국정 최고기관을 장악하던 그 암흑기는 살벌하고 음침하기만 했다. 영관급 장교들이 거만한 표정으로 장차관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대규모의 특별사면(안)에 대한 보고를 하러 차관을 수행하여 갔을 때였다. 사면업무는 검찰과 소관으로서 그 대상을 정하는 요강의 작성과 비밀 유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서울구치소 옆에 있던 교도관학교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주야로 작업을 했다. 최종 명단은 밤중에 프린트를 해서 캐비닛에 엄중 보관해 두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 조간신문에 그 명단이 1면 톱으로 실려 나왔다. 참 난감했지만 달리 무슨 수가 있을 리도 없고 해서, 차관께 보고를 하고 최고회의에 따라갔던 것이다.

브리핑 차트를 펼쳐 걸어놓고 특별사면 시행에 관한 보고를 하려고 하자, 위원 한 사람이 나서서, 아침 신문에서 다 봤는데, 보고는 무슨 보고냐고 고함을 질러댔다. 김형욱 중령(나중에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우리 차관께서 허리를 굽혀 사과를 했다. 여러 논의 끝에 요강과 사면 대상자의 일부를 바꾸어 신문 보도와는 다르게 조정해서 확정시키라는 지시가 나왔다. 한 신문기자의 특종 때문에 석방자가 뒤바뀌는 희비극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검토·준비할 시간 여유도 주지 않고 성급하게 법안을 올리라고 해서 애를 먹은 적도 있었는가 하면, 내가 모시고 있던 과장이 중앙정보부와 사이가 나빠져서 피신을 하는 바람에 아주 곤란을 당한 일도 생각난다.

한승헌
1963년 여름, 나는 서울지검으로 발령이 났다. 검사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그곳에 배경도 없는 내가 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법무부에서 공을 쌓은 덕분이었다. 검사 경력이 짧은 내가 가장 곤혹스러웠던 일은 수사와 무관한 데서 찾아왔다. 서울지검 관하 여주지청의 지청장이 돈 관계로 야반도주한 부인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에, 내가 지청장 직무대리로 한 달 동안 가서 고생을 해야 했다.

당시 꽤 이름난 목사와 장로 사이에 벌어진 고소사건을 조사할 때였다. 대질신문을 하려고 두 사람을 같은 시각에 불렀다. 그들은 내 책상 앞에 와서 나란히 앉더니 기도도 나란히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두 사람의 기도가 끝나질 않는다. 마치 기도 경연대회 같았다. 지금 눈 감고서 각자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하느님께서 몹시 난처하시겠구나 싶었다. 화해가 될 법한 분쟁이었는데도 끝내 그들은 싸우겠다고만 했다. 기독교인에 대한 내 평가가 한 단계 내려앉은 사건이었다. 1965년이 되자 검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점차 커졌다. 아무래도 내가 유능한 검사로서 나라에 이바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 성격상, 사람의 죄책을 추궁하는 것보다는 억울한 사람을 옹호하는 변호사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법조 경력도 낮은 초년 검사로서 변호사 개업을 한다는 것이 만만한 모험이 아니지만, 그래도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표를 냈다. 상부에 내 심정을 거듭 말씀드렸다. 마침내 한 달 뒤 나는 소원대로 검사 옷을 벗고 나왔다. 검사 임관 5년 만의 일이었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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