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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1 18:42 수정 : 2009.01.22 15:48

‘문단의 기인’ 천상병 시인(오른쪽)은 1967년 동백림 사건의 가장 황당한 희생자였다. 천 시인은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행려병자로 떠돌 때 간호사였던 목순옥(왼쪽)씨와 만나, 72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14

‘귀천’(歸天)이란 명시를 남기고 일찍이 하늘나라로 간 시인 천상병(千祥炳), 그가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노래한 이승의 여정에서, 실인즉 고문과 옥고의 액운이 끼어 있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예순한 살 때 쓴 자전적인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평탄한 놈은 아니었다. 1967년 7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내 인생은 사실상 끝났던 것이다. 그때 중앙정보부에서는 나를 세 번씩이나 전기고문을 하며 베를린 유학생 친구와의 관계를 자백하라고 했다. 죄 없는 나는 몇 차례고 까무러졌을망정 끝내 살아났다.”

세칭 동백림 사건의 수사 발표나 공소장에서 ‘천상병’이란 이름이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명이인쯤으로 알았다. ‘천재 시인’이자 기행과 화젯거리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이 그런 사건에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동명동인이었다. 34명이나 되는 그 사건의 피고인 중 유일하게 그에게만 변호인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는 그를 구치소로 찾아가서 변호인을 자청했다.

그에 대한 죄명은 반공법 위반 외에 공갈죄가 얹혀 있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그가 서울대 상대를 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그 상대 친구 중에 강빈구씨가 있었다. 공소장에 의하면, 천 시인이 친구 강씨가 북의 간첩으로 암약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수사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았으므로 반공법상의 불고지죄를 범했다는 것.

다음으로 공갈죄 부분은 이러했다.

“천 시인은 65년 10월 어느 날 ‘중앙정보부에서 동독 갔다가 온 사람을 대라고 해서 난처하다’는 말을 함으로써 강씨를 협박하고, ‘돈 2만원을 주면 무마해주겠다’고 해서 6500원을 받아냈으며, 이후 67년 6월25일까지 같은 수법으로 공갈을 하여 1주일에 한두 번씩 술값으로 100원 내지 500원씩, 2년 동안 모두 3만여 원을 받아 갈취했다.”

세상에 이런 공갈도 있는가 싶었다. 천 시인이 담뱃값이나 술값 같은 용돈을 달라며 아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습성은 문단 안팎에서는 널리 화제가 되어 있는 터였다. 절친한 대학 친구를 간첩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기껏 매회 100원 내지 500원씩 갈취를 했다니, 이는 누구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였다. 요컨대 그는 친구인 강씨에게, 다른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했듯이 손을 내밀고 용돈을 ‘수금’했을 뿐이었다.

한승헌
그러나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년에 3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사법부에 더 기대할 것이 없다며, 항소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석방된 천 시인은 내 사무실로 인사를 와서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그때 ‘빈자일등’이라는 말도 했다. 물론 나는 그를 위로할 겸 그에게 저녁 대접을 했다. 나중에 문단 친구들에게 천 시인의 식사 제의 이야기를 했더니, “천상병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 있는 일일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그는 한때, ‘남산’에서 받은 전기고문의 후유증에다 영양실조까지 겹친 몸으로 길거리를 헤매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가 불귀의 객이 된 줄로 알고 문우들이 힘을 모아 <새>라는 유고시집까지 간행했는데, 실인즉 그는 서울의 한 시립병원에 행려병자로 수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주 어려울 때 만난 부인 목순옥씨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서 술을 주식처럼 즐기면서 살다가, 93년 4월 그믐께 홀연히 귀천했다. 천 시인이 ‘이순(耳順)의 어린 왕자’를 자처하면서 쓴 글의 마지막엔 이런 고백이 담겨 있다. “작년부터 나는 아내에게서 매일 2천원씩 용돈을 타 쓴다. (중략) 하루에 맥주 두 잔 이상은 마시지 않겠다. 간경화 치료를 받고 난 뒤, 아내는 하루 주량을 맥주 두 잔으로 ‘언도’했는데, 나는 이것을 한 번도 위반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열심히 시를 쓸 것이다. 천상의 친구들을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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