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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5 18:25 수정 : 2009.02.05 23:49

아나운서는 되지 못했지만 변호사로서 방송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1970년대 초 법조문우회 회원들과 함께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하고 있다. 이범렬, 김일두, 이항녕, 필자, 나석호 변호사. (왼쪽부터)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23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졌던 내가 훗날 방송국에 드나들 일이 생겼으니, 사관학교에 떨어지고도 장교가 된 것에 비유될 수 있을까? 언젠가 <문화방송>(MBC) 신입사원 교육에 갔을 때, 내 낙방 체험을 털어놓으며 ‘낙방생이 합격자 여러분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나오게 되어 면구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방송>(KBS)의 남산 시절, 나는 매주 한 번씩 법률 이야기를 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다. 물론 흑백 방송이었다. 기억에 남는 방송은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이른바 텔레폰 리퀘스트로 진행하던 법률상담 생방송 프로였다. 법조 선배인 권아무개 변호사님과 나란히 앉아서 질문 내용에 따라 그중 한 사람이 답변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권 변호사님의 답변이 좀 직선적이고 거칠어서 간혹 아슬아슬할 때가 있었다.

‘이름이 안 좋아서 개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한 여성의 질문에 대해서 권 변호사님의 즉답은 이러했다. “내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판사 할 때 절도범으로 잡혀 온 사람 이름이 바로 이승만이었어요. 이름이 같아도 운명은 달라요. 그러니까 이름 고칠 필요 없어요.”

또 한번은 ‘남편과 이혼을 해야겠는데, 위자료로 받아낼 재산도 없는 남자라서 아이들하고 살 길이 막막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남편 재산이 없으면 할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돈 많은 남자하고 결혼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여자들이 이혼만 두어번 잘 하면 평생 잘 먹고 살 수 있거든요.” 옆에서 듣던 나는 진땀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주에 방송국에 갔더니,(그때는 인사동에 사옥이 있었다), 청사 입구부터 건물 안 계단까지 여성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들의 연좌 규탄에 큰 곤욕을 치르고, 우리는 방송에서 도중하차했다. 나도 연대책임을 지고 운명(?)을 함께했던 것이다.

<동양방송>(TBC)에 <역사의 향기>라는 교양 프로가 있었다. 당시 방송계에서 알아주던 사상완 피디(탤런트 사미자씨의 오빠, 작고)가 맡고 있던 그 프로에 나갔을 때였다.

그날 주제는 암행어사의 공과에 대한 논전이었는데, 나는 ‘과’를 들추는 역을 맡았다. 암행어사라면 박문수와 함께 이몽룡이 대표적인 정의파·의리파처럼 전해 내려온다. 나는 그것을 반박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몽룡은 직권남용죄를 범한 자라는 이설(異說)을 펴기로 했다. 즉, 그는 암행어사 제수를 받자마자 남행을 했는데, 도중에 민정을 살피거나 비리 공직자를 색출할 생각은 않고 남원으로 직행하여 자기 애인 욕보였다고 변학도를 봉고파직했으니, 이는 사적인 원한을 공권력 행사로 갚은 것이니만큼 똑 떨어진 직권남용죄에 해당된다고 논고(?)를 해서 호평을 받았다.

1971년 2월부터 2년 동안, 나는 방송윤리위원회(방륜) 위원으로 일했다. 청사는 조선일보사 뒤켠, 옛날 정동방송국 자리에 있었다. 방송윤리규정에 위반된다고 모니터링되어 올라오는 방송 프로그램을 심의하여 제재를 하는 기관이었다. 위원회에서는 방송 담당자, 출연자 또는 방송국 자체에 대하여 주의환기, 견책, 경고 또는 출연정지 등의 결정을 한다. 그 당시는 방송국에서 방송윤리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 풍조가 있었고, 특히 방송윤리강령에 명시되어 있는 방송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기는 사례가 흔했다. 정부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방송이 일상화되어 있어도 방륜이 이를 제대로 심의 제재하지 못했다.


한승헌 변호사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국방송> 라디오가 여당에 편향적인 방송을 한 것을 심의부에서 심의 대상으로 올렸다. 그러자 대부분의 위원들은 난처해하면서 결정을 회피하려는 눈치였다. 첫날은 그냥 넘기고 그다음 주의 심의로 연기를 해놓았는데, 연기된 그날 아침, 모 방송국에 있는 절친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 구경을 가자는 유혹이었다. 우회 전략을 직감하고 사양한 다음 방륜 회의장으로 갔다. 불문에 부치고 넘어갔으면 하고 핑계를 궁리하는 위원들에게 제재불가피론을 강조하고, 절충안을 내어 제재의 건수와 수위를 조금 낮추어 결국 관철시켰다.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그 결정을 두고 국영방송이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첫 사례라며, 방륜이 무슨 불충이나 한 듯이 흥분하는 사람들이 나를 주모자로 본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그 정도의 미온적인 제재를 두고서….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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