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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8 19:08 수정 : 2009.06.18 19:08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둬 프랑스의 두 차례에 걸친 식민지배를 물리친 베트남의 ‘독립 영웅’ 호찌민(왼쪽)과 보응우옌잡(오른쪽) 장군. 필자가 미군사령부를 떠날 결심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34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것은 1953년 7월 27일이었는데, 그때 나는 도쿄 미군사령부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조인식 현장에는 없었소이다.

그 무렵 도쿄로 돌아온 나는 문익환 목사와 더불어 주로 일본어를 아는 하와이 출신 2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퍽 한가롭고 평온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나, 학업을 중단한 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런 생활에 매달려 젊은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가 있었겠소이까. 문 목사께서는 신학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54년 프린스턴대학으로 떠나셨는데, 그해 4월 첫아들이 태어나고 보니, 처자 식구를 일본에 다 남겨둔 채 문 목사의 뒤를 따라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어찌해야 좋을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소이다.

바로 그 무렵 심리적으로 내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그것은 미국의 지원 아래 베트남으로 되돌아온 프랑스군이 북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호찌민의 베트남군에게 코가 납작해지도록 두들겨맞아 백기 항복했다는 엄청난 사건이었소이다. 그날이 54년 5월 7일이었는데, 나는 물론 호이침 장군, 아니 호찌민 아저씨를 위해 쾌재를 불렀을 것 아니오이까. 식민지 백성이던 베트남인들이 종주국 프랑스를 무찌른 것이니 나로서는 얼마나 통쾌한 노릇이오이까.

미국은 프랑스를 제쳐놓고 직접 호찌민 쪽과 교섭을 벌이느라 그해 7월부터 제네바에서 휴전회담을 열고 북위 17도선에서 베트남을 남북으로 가른 다음 고딘디엠 친미정권을 세워 전쟁을 확대해 나가게 되는데 그게 바로 한반도에서 쓴 수법 바로 그대로 아니오이까. 공교롭게도 판문점에서 조인된 한국전쟁 정전협정 제60항 규정에 따라 앞서 4월부터 정치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었던 것인데, 같은 때 같은 장소에서 두 회담이 동시진행형으로 열리고 있었다는 것은, 한국전쟁이 베트남전쟁이요 베트남전쟁이 한국전쟁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실이 아니겠소이까.

물론 우연의 일치였겠으나, 바로 그런 때 태어난 아들에게 장차 내가 떳떳한 아비 노릇을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미군을 떠나야겠다는 초조감으로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바로 그 아이가 딸린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는 미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야릇한 딜레마에 빠져 참으로 고민스러웠소이다.

18세기의 영국인 패러데이는 거의 독학으로 연구를 거듭해 전기분해에 관한 ‘패러데이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화학자인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조물주께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탐구한다는, 말하자면 신학적인 동기에서 과학자가 된 사람이었소이다.

우리들 인간(호모사피엔스)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의 진화를 설명하는 다윈의 진화론은 나로서는 부정해야 될 이유가 없는 진실이지만, 미국에는 이를 허위라고 부정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근본주의자(펀더멘털리스트)들이 많이 있소이다. 학교에서조차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선생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우스꽝스러운 사태조차 오늘날 대명천지에도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 근본주의자들의 우매를 조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다윈의 진화론에 만인을 납득시키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점은 없을까, 그것은 오늘까지도 내가 품고 있는 의문점의 하나이기도 하외다.

모든 생물체가 어떠한 경로를 밟아 오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가, 생명에 관한 ‘어떻게’(How)는 다윈의 진화론이 말하는 그대로이겠으나, 그러나 하나의 생명체인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호모사피엔스가 호모사피엔스인 이상 이 질문은 인류가 절멸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나, 그러나 그 순간까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질문, 즉 생명에 관한 ‘왜’(Why)에 대해서는 다윈의 진화론은 침묵할 것이 아니오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그래서 말이외다. 그때 내 생각에 이제 과학자의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모교 에머리대학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과학과 신학을 연결하는 연구를 하고 책도 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대단히 외람스럽고 주제넘기 짝이 없는 생각에 젖어 있었던 것이외다.

그때는 미군사령부의 언어학교도 차츰 문을 닫게 돼 어차피 미군을 떠나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다시 한번 판문점 근무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더군요. 약간 학비도 마련해 둘 필요도 있고 해서 55년 가을께 재차 판문점 캠프로 돌아갔소이다.

그런데 그 판문점 캠프에서 그후 내 일생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되는 뜻밖의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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