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3 17:58
수정 : 2009.08.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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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5월 17일 한민통 회원들을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 규탄·박정희 정권 퇴진 요구 민중대회’를 연 뒤 도쿄 시내에서 시위행진을 하고 있다. 맨 앞줄 가운데가 배동호 당시 상임고문이다. 이 무렵 필자는 한민통 집행부와 한창 갈등을 빚었다. <한민통 20년 운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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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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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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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어느날 무슨 볼일이 있어 오사카까지 갔던 길에 가까운 친구 문병언씨를 만났소이다. 오사카까지 간 길이라면 으레 문 동지를 만나 같이 한잔 걸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배동호씨가 찾아와서 나에 대해 듣기 거북한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는 얘기를 하더이다.
‘정경모가 한민통 청년회의 어느 간부에게 “앞으로 내가 곽동의와 한판 맞붙어 승부를 겨루게 될 터인데, 너희들은 내 편을 들겠는가 곽 편을 들겠는가”라고 물었다’는 것이외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암말도 안 하고 “돈 얘기는 없었는가” 하고 물었소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씨는 “한민통 경비로 지금 급히 500만엔이 필요하니 원조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외다. 그래서 문 동지가 “돈 얘기라면 이제까지 정경모 선생을 통해서 요구가 왔는데, 왜 이번에는 당신이 직접 왔는가”라며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이외다. 그랬더니 배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실은 정경모가 이러저러한 말을 한청 간부에게 했다’며 나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을 하더라는 것이었소이다.
여기서 문병언 동지를 소개해야 되겠는데, 이분은 부동산 거래로 거액의 재산을 모은 사람으로, 총련 안에서도 거물급 상공인으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내가 한민통에서 신문 만드는 일을 시작하자 스스로 나를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 주었소이다. 상공인이면서 책도 부지런히 많이 읽었던 까닭에 아사히신문사에서 나온 나의 첫번째 책부터 <세카이>에 실린 기사까지 다 읽고서 나와 연락이 닿아 짧은 시간에 서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소이다. 그러니까 그때가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나고, 남쪽의 민주화운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던 무렵이 아니었겠소이까. 내가 신문을 내고 있다니까 비용으로 쓰라고 엄청난 금액의 자금을 한민통에 대주고 있던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마치 맡겨놓은 돈을 찾아오라는 듯이 300만이다 500만이다 하는 돈을 가져오라고 배씨한테서 부탁을 받으면 나는 처음에는 고분고분 말을 들었던 것이외다. 그러나 내가 차츰 하라는 대로 말을 안 들으니까 배씨가 직접 나선 것인데, 내게 덤터기를 씌워 조직에서 몰아내고, 또 봉이나 마찬가지인 문씨를 독점하겠다는 뜻인데, 그 ‘심보’가 야비하고 고약하지 않소이까. 그들은 문 동지가 아낌없이 돈을 내는 것은 김대중씨를 등에 업고 있는 자기들의 간판, 한민통 때문이니까 정경모를 몰아내면 그 돈은 자기네들 주머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외다. 또 정경모만 하더라도 뭐 별것도 아닌 것이 잘난 척하면서 날치고 있는 것도 역시 한민통이라는 간판을 지고 있는 까닭이니, 정경모를 조직에서 밀어내면 그자는 침 먹은 지네 꼴일 테고, 이거야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아닌가? 그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외다. 그것은 결국 오산이었고, 꿩도 알도 그들 입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말이외다.
나한테 ‘곽동의와 한판 붙겠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그 ‘한청 간부’는 물어보나 마나 김군부라는 사람이었겠는데, 그는 김대중씨 경호대장을 거쳐 당시 ‘한청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곧잘 농간을 부리곤 했소이다. 나, 정경모를 몰아내기 위한 모함은 ‘배·곽·김’ 셋이서 구수회의 끝에 짜낸 어설픈 시나리오였을 뿐이었소이다.
도쿄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참고 다음에 올 사태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절대로 자기 발로 걸어서 나가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소이다. 오히려 추방당하고 모욕 속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남겨 두는 것이 그들에게 주는 타격이 클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결심이었소이다.
다음날 아침 한민통 사무실로 나가자마자 ‘배와 곽’ 두 사람을 불러 앉혀 놓고 나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한청 간부가 누군지, 언제 어디서 내가 그 말을 했는지 그자를 이 자리로 불러오라고 따졌으나, 둘은 묵묵부답 아무 소리도 없이 밖으로 나가 버립디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들은 그들대로, 또 나는 나대로 결판의 준비를 했을 것 아니오이까. 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왔소이다. 배동호씨가 자기들 있는 방으로 좀 오라고 연락을 해왔더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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