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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23 18:56 수정 : 2009.08.23 21:52

미국의 대표적인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오른쪽)와 필자(왼쪽)는 1980년대 초반 <한국전쟁의 기원> 일어판 번역을 계기로 인연을 맺어 3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누고 있다. 90년 필자가 도쿄에서 주최한 ‘한국전쟁 40돌’ 기념 행사에서 커밍스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80

내가 망명객으로 일본에 와서 민족운동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 사회에 팽배한 민족적 우월감이었소이다. 우리에 대한 그들의 민족적 우월감은 참으로 뿌리가 깊고, 그 뿌리를 캐어 내려가면 갈수록 그 근원은 일본인들이 거의 우상과 같이 숭배하는 소위 ‘선각자’들에게 가 닿게 되는데 그 ‘선각자’라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우리 민족에 대해서는 침략주의자들이니, 내가 일본에 와서 피치 못하게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 사람들이 우상으로 섬기는 선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우상파괴 운동이었소이다.

또 일본인들의 ‘우상숭배’를 의도적으로 이용하거나 부추기고 있는 것이 미국의 극동정책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됨에 따라 나의 관심은 필연적으로 메이지 이후 영미권과 맞물려 있는 일본 근대사를 파고드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소이다. 일본 근대사에 대한 나의 탐구는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었던 까닭에 이에 관련된 화제를 몇 가지 제공하려고 하는데, 그 전에 미국과 일본의 국가 이익이 한국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알기 쉽게 해설할 글을 한 편 소개하겠소이다. 이것은 나의 미국인 친구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 위기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라는 표제의 글인데, 내 손으로 번역해서 잡지 <세카이>(1987년 3월호)에 싣게 한 글이기도 하오이다.

‘① 미국의 시각에서 한국은 일본을 방위하는 전초기지라는 점에서 이해관계를 따지고 있을 뿐 그 나라에서의 민주주의나 인권문제는 2차적인 것에 불과하고, ② 관변 쪽 미국인들의 외교사령적인 발언이 무엇이든 간에, 한국인은 민주주의를 실천할 만한 능력은 없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본심인 게 사실이며, ③ 한국은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④ 한국인(조선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멸시는 역사적으로 19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보호령화)를 인정한 것도 조선 민족은 자치 능력이 없다고 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은 20세기의 전 기간을 통하여 조선인은 민주주의를 실천하기에는 미숙한 민족이므로 어떠한 형태로나 일본 내지 미국의 관리(보호화, 식민지 지배, 미군정 신탁통치, 한미합동사령부) 없이는 독립할 수가 없는 나라라는 전제 아래 정책을 수립해왔다는 것이 역사가 브루스 커밍스의 결론인 것이외다.

이상과 같은 결론에 곁들여 커밍스 교수는 한국 민주화세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동지적인 조언도 하고 있소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독재정권이 악랄하든 말든 일본을 지키는 전초기지로서의 구실을 다해주는 한 그것으로 족할 뿐이며, 미국 정부가 민주화세력 편에 서서 독재정권의 퇴진을 위해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 이 점을 감안하면서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또한 다른 글에서 커밍스는 해방과 더불어 조선에 상륙한 미군은 어느 사이에 일본인이 본 것과 같은 시각으로 조선인을 보게 된 까닭에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협력적이고(cooperative), 질서를 존중하며(orderly), 또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주는(docile) 사람들이라고 호의적으로 보는 한편, 조선인들은 고집이 세고(headstrong), 말을 잘 안 들을 뿐만 아니라(unruly), 난폭한(obstreperous) 자들이라고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소이다.(<한국전쟁의 기원>)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한국인은 무지몽매한 백성이니만치,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태생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앞서 말한 기우치의 사고나, 또 한국인은 그 역사와 문화가 족쇄가 되어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말하자면 ‘개 발의 편자’라는 식의 다나카의 사고를 상기한다면, 이들 일본인들의 사고와 미국인들의 사고가 어쩌면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일까, 아마 놀라움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라 믿는데, 이런 일치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그것은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는지 의도적인 정치공작의 결과였는지 앞으로 이 문제를 두고 얘기를 전개하겠소이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한 커밍스의 조언의 글이 ‘87년 6월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석달 전에 발표된 글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주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80년 5월 광주에서 참극이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때 미국의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서해안에 나타나자 다들 이제는 살았다고 만세를 부르지 않았소이까. 아! 너무나도 순박하고 너무나도 어수룩한 우리 민족! 키티호크가 전두환을 치려고 온 것이었소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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