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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06 19:14 수정 : 2009.12.06 19:14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일이기도 했던 2000년 10월 1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제1부위원장(왼쪽)이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오른쪽)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0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의 중개를 계기로 서울과 평양 사이의 물밑교섭이 진행되자, 이에 자극받은 클린턴이 서둘러 페리 조정관을 평양으로 파견하는 등 1999년은 동이 터오는 조짐이 어렴풋이나마 보이기 시작한 해였는데, 2000년으로 접어들자 이제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희소식이 연거푸 터져나와 우리는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깜짝깜짝 놀라지 않았소이까.

그게 그해 4월 10일이었소이다. ‘남북은 7·4공동성명의 3대 원칙에 의거하여 통일의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역사적인 수뇌회담을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는 성명문이 발표되는 것을 보면서 다들 얼마나 가슴 뛰는 감동을 느꼈소이까. 그리고 실상 6월 13일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순안비행장까지 마중나온 김정일 위원장과 서로 얼싸안고 볼을 비비는 광경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꼭 11년 전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이 부둥켜안았던 광경을 회상하면서 엉엉 울고 싶은 감회였소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연년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이라는 당시(唐詩)의 한 구절이었소이다. ‘해마다 해마다 꽃은 서로 닮았으나,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니 사람은 같지 않고나’라는 이 시는 원래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엘레지(비가)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 시에서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바뀌되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민족의 에스프리는 변하지 않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아무튼 두 수뇌가 평양에서 만나 6·15공동성명이 나오고 얼마 뒤인 9월 2일, 몇십년 동안이나 전향을 거부하면서 고된 형무소살이를 견뎌오던 장기수 열세 분이 판문점을 거쳐 고향땅을 밟을 수가 있었다는 눈물겨운 얘기가 전해졌지요. 그로부터 불과 한달 뒤인 10월 10일, 이날은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일이었는데 그동안 남쪽에서 말하자면 ‘제2의 해방운동’을 위하여 애쓴 50여명의 인사가 북쪽에서 보내온 특별비행기편으로 평양으로 들어가 기념식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우선 문 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를 비롯하여, 주체사상에 관해서 긍정적인 글을 썼다는 죄로 옥고를 치른 신학자 박경순 선생(목원대),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사상을 전파했다는 죄로 붙들려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을 받고, 그래도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것이 기적과 같이 여겨지는 백기완 선생(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 이른바 ‘불온한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분들도 있었으니, 이것이 꿈이 아닌가, 참으로 허벅지를 꼬집어보고 싶을 정도의 심경이었소이다.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워싱턴 시각으로는 같은 10월 10일, 아무도 꿈도 꾸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백악관에서 벌어지지 않았소이까. 평양의 특사로 파견된 조명록 차수가 오전 8시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만난 뒤, 군복으로 갈아입고 백악관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을 시작한 것인데 그때가 오전 10시였소이다. 도쿄 시각으로는 10일 밤 12시가 아니오이까.

쿨쿨 자다가 다음날 아침 잠이 깨어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조 특사(국방위 제1부위원장)가 클린턴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서 찍은 사진이 시야로 튀어들어와 정말로 내가 아직 잠이 깨지 않아 무슨 꿈 같은 걸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심경이었소이다. ‘경천동지’라는 말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리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그리고 12일 조 특사의 귀국을 앞두고 ‘북-미 코뮈니케’가 워싱턴과 평양에서 거의 동시에 발표된 것인데, 이 코뮈니케의 알맹이는 ‘잠정적인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 최종적으로 한국전쟁을 종식하겠다’는 것이었고, 그 수속을 위해서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할 것이며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한발 앞서 평양을 방문하여 김 위원장을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이었는데, 지금 묵은 메모장을 들춰보니 이 소식을 내가 일본에서 들은 것이 12일 밤 9시 텔레비전 뉴스 시간이었소이다. 휴, 하면서 참으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았겠소이까.

문 목사와 김 주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난 것이 꼭 6년 전인 94년이었는데, 같은 해 뇌경색으로 쓰러져 같이 가나 보다 했던 내가 아직도 살아남아 이런 경사를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가 참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소식을 들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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