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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북한 당국에 억류된 미국인 여성기자 2명의 석방 협상을 위해 평양을 전격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오른쪽)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 <조선중앙텔레비전>의 화면을 찍은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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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6
성경에 범사에는 때가 있다고 하는 말씀이 있지 않소이까.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을 출 때가 있다고 말이외다.(전도서 3장) 몇 해 전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듣고 있던 어느 한국인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일이 있었소이다. “정 선생, 남북통일은 언제쯤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날을 보고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점을 치는 사람도 아니니 꼭 찍어서 이날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어 그냥 “아침이 안 오는 밤은 없다니까 어느 때이고 아침은 오겠지요”라고 얼버무려 버렸는데 그 스님은 그 뒤 세상을 떠나셨소이다. 그런데 만일 그분이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통일은 언제냐”는 질문의 초점을 약간 바꾸어 “미국과의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나겠느냐”고 물어 오신다면, 좀더 자신을 가지고 “내년(2010년)에는 무슨 결론이 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외다. 그건 오바마 정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도 하겠는데, 우선 오바마 대통령은 핵 문제에 대해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와도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다름아닌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지 않았소이까. 힐러리의 임명이 발표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소이다. 아, 이젠 됐다 하면서 말이외다. 지금 문제가 돼 있는 핵은 북한 말고는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핵이 아니오이까. 인도나 파키스탄은 구체적으로 겨냥한 목표가 있어 개발한 핵이니만치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며, 이스라엘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을뿐더러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핵 개발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란이 핵의 보유를 단념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없지 않소이까. 이에 비해서 북한 핵은 구체적으로 목표가 있어 개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 가해 오는 협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니만치 군사용이 아니라 말하자면 외교용이 아니오이까. 조건에 따라서는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한 나라이니 오바마가 정말로 핵이 없는 세계를 추구한다면 제일 먼저 해결해야 될 핵은 북한 핵이어야 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지난 8월 북한에 구속돼 있는 미국 여성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전 대통령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소이다. 1999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고어가 마지못해 대선 패배를 인정한 것은 12월 13일이었지만, 그래도 평양 방문을 단념하지 못하고 클린턴이 최종적으로 방문 계획을 포기한 것은 12월 28일이었소이다. 북-미간의 제반 문제는 해결의 순간을 코앞에 두고 원점으로 되돌아간 채 부시 집권 8년이라는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 것이나, 지난여름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 활짝 웃는 얼굴의 김정일 위원장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일이 제대로 풀려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와 닿았소이다. 클린턴은 ‘북-미간의 관계 정상화’를 규정한 제네바 기본합의서(1994년 10월 21일)와, 조명록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발표된 ‘잠정적인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북-미 코뮈니케’(2000년 10월 2일)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오이까. ‘기본합의서’나 ‘북-미 코뮈니케’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 대해서는 전 대통령 클린턴, 오바마 현 대통령, 그리고 국무장관 힐러리 사이에 갈등 같은 것이 있으라고는 상정하기 어렵고, 이미 합의가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바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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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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