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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2 18:25 수정 : 2010.07.12 18:25

1985년 8월12일 가톨릭농민회 무주·진안·장수분회 회원들이 장계지서를 점검한 채 장수 분회장을 구타한 지서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옥상에 새마을기 대신 게양해놓은 가톨릭농민기가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 있다. 〈가톨릭농민회 30년사〉에서

문정현-길 위의 신부 31

전북 장수의 장계성당이 중심이 된 가장 큰 싸움은 가톨릭농민회 장계분회에서 연 ‘무진장(무주·진안·장수) 농민회 단합대회’였다. 훗날 ‘9·1투쟁’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1986년 8월8일 가톨릭농민회 장계분회는 ‘권인숙양에 대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 장계장터에서 뿌렸다. 그런데 유인물을 돌리던 김동영 장계 분회장이 경찰 지서장한테 욕을 얻어먹고 머리채까지 잡혀 끌려가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에 분노한 농민회 회원들은 12일 장계성당 부근의 아카시아숲에서 단합대회를 한 뒤 장계 시내로 진입했다. 펼침막을 들고 꽹과리를 치며 우체국, 면사무소 따위의 기관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지서로 갔다.

지서 앞에서 송남수 전 분회장이 핸드마이크를 잡고 “지서장은 나와서 사과해라. 사과 안 하면 주저앉겠다”고 요구를 했지만 지서장은 나오질 않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농성을 하자 한참 뒤에야 경찰들이 나와서 지서장이 없다고 했다. 농민회 회원들은 자신들이 서장을 찾아보겠다며 풍물패를 앞세우고 지서 안으로 진입했다. 농민들은 방마다 샅샅이 뒤지면서 옥상까지 올라가서는 풍물을 치고 한바탕 놀고 나서 새마을기를 내리고 대신 가톨릭농민회기를 세웠다. 그런 뒤 만세삼창을 하고 내려왔다. 그러고는 지서 앞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지서장 사과해라’서부터 대정부 구호까지 외쳤다.

그날 밤 성당으로 돌아와 지낸 농민들은 다음날 날이 밝자 또다시 지서로 가서 시위를 하고 마무리로 거리행진을 하며 성당으로 돌아왔다. 성당 부인회에서는 뒷마당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수십명의 밥을 해댔다. 그러자 전주에서 경찰 기동대까지 동원해 성당을 에워쌌다. 경찰과 농민회원들은 성당 바로 앞 도로에서 온종일 밀고 당기기를 주고받았다. 밤이 되자 마침내 기동대가 최루탄을 터뜨리며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농민회 회원들과 경찰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나는 기동대에게서 무전기 4대를 빼앗았다.

다음날, 그 좁은 지역에서 최루탄까지 터지고 시위가 격해지자 지역개발위원 같은 유지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농민회 대표들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지역 유지들은 장계 사람들끼리 시위하는 건 인정하겠지만 외부 사람들까지 와 있는 것은 곤란하다며 내보내라고 했다. 그러자 송남수 전 회장이 “좋다. 장계 농민회 사람만 하겠다. 그러니 당신들도 장계 경찰들만 남고 전주에서 보낸 기동대며 경찰들은 다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전주에서 온 경찰들이 나가고 경찰서장이 성당에 들어와서 사과를 했다. 농민회 회원들은 사거리에서 시위를 한 뒤 성당으로 돌아와 해단식을 했다. 해단식에 서장과 군수도 같이 참여했는데 우리가 농민회 만세삼창을 하자 얼떨결에 서장, 군수도 같이 따라 했다.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시위 도중 내가 빼앗은 무전기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에게 되돌려주려고 찾아보니 무전기가 없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는데 농민회 간사였던 강기종이 임실 농민회에 있는 친구가 가지고 갔다고 말했다. 자정이 넘어서 송남수 전 회장과 함께 임실로 갔지만 허탕을 치고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가 장계성당 병원 화장실에 버렸다는 거였다. 그날 새벽 1시 분뇨차와 소방차가 동원돼 분뇨를 다 퍼내고 경찰들이 모내기할 때 신는 장화를 신고 화장실에 들어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끝내 무전기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결국 무전기의 아이피(IP) 주소를 싹 바꿔야 했다. 나중에 강기종이 가지고 있다는 게 드러났지만 무전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문정현 신부
그뒤 가농 전국본부에서 9월1일치로 소식지가 나왔다. 8절지 크기의 4면으로 발행되는 신문이었는데 거기에 ‘가톨릭농민회 장계성당 단합대회 때 장계 지서 점거하고 농민기를 달다’라는 제목으로 기사와 사진이 실렸다. 그런데 그게 중앙정보부로 흘러가는 바람에 2개월 뒤 강기종·김동영·송남수·최학부씨가 잡혀갔다. 미사 시간에 <요한복음> 17장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은 나는 미사가 끝나자마자 장수군청 군수실로 들어가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이 더 확대되지는 않고 사흘 만에 다 풀려났다. 장수 경찰서장, 군수가 농민회와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무전기를 잃어버린 사실까지 드러나 징계를 당할까 두려워 서둘러 마무리를 한 것이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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