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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말 한겨레문화센터의 요청으로 ‘금강산 해맞이’ 해설사로 답사단을 이끈 필자가 금강산 들머리에 있는 금강문 앞의 앙산대에서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에 대해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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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94
2003년 말 한겨레문화센터의 요청으로 ‘2004 금강산 해맞이’ 행사에 다녀왔다. 그 전에 유홍준 교수와 함께 금강산 관광을 주관하는 현대아산의 초청을 받아 금강산 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그저 따라가기만 해서 조금 무미건조하게 보냈다. 이번 금강산 해맞이 행사에는 5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나는 역사기행 전문가의 ‘끼’를 보여주었다. 어쨌거나 북한이 관리하는 지역을 해설사로 갔으니 할 말이 많지 않겠는가. 온정리 들머리에서부터 얘기가 시작되었다. 오른쪽 높은 바위에 쓰인 ‘천출장군 김정일’을 두고 참가자들이 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북쪽 안내원도 있는 만큼 말조심을 해야 했다. 이 ‘천출’은 천한 신분에서 태어났다는 뜻의 천출(賤出)이 아니라 하늘이 낸 인물이라는 뜻의 천출(天出)이라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이어 구룡폭포 쪽으로 올라가는 길의 바닥과 바위에도 글씨들이 무수히 쓰여 있었다. 하나는 유람객들이 새겨놓은 것이요, 다른 하나는 북한 당국에서 새겨놓은 것이다. 유람객들의 글은 주로 바닥에 쓰여 있으나, 북한의 글씨는 길섶 바위와 높은 절벽을 가리지 않고 크게 새겨놓았다. 특히 입구 쪽에서 조금 올라가면 바위에 쓰인 ‘지원 김형직’(志遠 金亨稷)이 한눈에 보였다. ‘지원’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뜻을 멀리 가져라’는 말이요, ‘김형직’은 김일성의 아버지다. 김형직이 만주 일대에서 민족운동을 할 때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 바로 ‘지원’이었다. 이런 내력을 참가자들이 알 리가 없으니 내 입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에 들어선다는 금강문 앞 바위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가로세로로 얽혀 쓰여 있었다. 금강문을 벗어나 계곡을 따라 구룡폭포 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도 냇가의 바닥과 바위에 줄줄이 이름이나 시구절이 쓰여 있었다. 특히 옥류동과 연주담 언저리에 집중되어 있는데 새로 길을 내면서 이 글씨들이 마구 짓밟히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귀중한 이름이니 밟지 않고 지나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김일성이 이곳에 유람을 와서 쉬어 간 곳마다 돌비를 새겨놓았는데 북한 감시원 두세 사람이 지키고 있었으니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거나 이거나 실소케 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군데군데 발길을 멈추고 이 이름들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대부분 조선 후기 인물들이었다. 특히 강원도 관찰사니 춘천부 유수니 하는 따위 지방관의 이름도 눈에 띄었고, 안동 김씨, 여흥 민씨, 반남 박씨 같은 세도가나 양반들의 이름이 많이 보였다. 또 구룡폭포의 바닥에는 조선 후기에 권력을 휘두른 송시열이 썼다는 초서체 글귀도 보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권력자들의 이름 속에 실학자로 이름난 인사들이나 문인, 학자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짓을 별로 즐기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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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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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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