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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남북 역사학자들이 함께한 ‘개성지구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학술토론회와 유적답사’에 참가한 필자가 개성 선죽교를 둘러보고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일반인 관광 개방에 앞선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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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01
2005년 11월18일 이른 아침 나는 학자와 실무자 등 44명의 남쪽 방문단 일원으로 민통선을 넘어 개성으로 향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을 출발한 버스는 자유로를 달린 지 한시간 만에 도라산남북출입사무소에 이르렀고 우리는 간단한 짐 검사만 받고 통과했다. 금강산관광 지정버스인 대화관광버스는 군사분계선을 지나 10분 만에 북쪽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개성에 도착하니 모두 조금은 긴장하면서도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일반인 관광이 허용되기 전이니 역사적인 방문의 감회가 컸으리라. 하지만 삭막한 거리 풍경과 찬바람에 펄럭이는 아파트 창문의 비닐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날부터 3박4일 동안 남쪽의 남북역사학자협의회(위원장 강만길)와 북쪽의 민족화합협의회(부회장 박경철) 공동 주최로 ‘개성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남북 공동 학술토론회와 유적답사’가 진행됐다. 남쪽 참여자들은 대부분 고려사 전공자였다. 북쪽에서는 사회과학원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 김경순 개성박물관장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우리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묵고 있는 가건물에 짐을 풀었다. 당시는 공단 조성 공사가 한창이어서 숙소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북쪽에서 경영하는 자남산여관은 수용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본격적으로 남쪽 손님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첫날 일행이 가장 먼저 돌아본 곳은 선죽교였다. 선죽교는 6~7m 길이에 지나지 않는 돌다리이나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곳이어서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안내를 맡은 ‘강사 동무’의 설명으로는, 다리 중간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돌은 후대 사람들이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려 일부러 붉은 돌을 골라 갈아끼웠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웃음이 났다. 그날 오후 3시부터 자남산여관에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남쪽에서는 한국역사연구회의 박종진을 비롯해 서성호·김영미·황기원이, 북쪽에서는 문화보존지도국의 리기웅·김인철·리창언이 발표를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서두르자는 의견이 있었고 만월대의 공동 발굴과 복원 방안도 논의되었다. 추운 날씨 탓에 실내는 썰렁하였고 모두들 근엄한 표정이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학자가 모여 고려사 관련 토론을 하는 자리였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발표 도중 전등이 중간중간 나가는 바람에 다시 불이 켜질 때까지 조용하게 기다려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지 않아 저마다 한마디씩 할 법도 했으나 침묵 속에서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재미있는 풍경이 아니겠는가? 첫날 저녁 식사는 현대아산의 숙소인 봉동관에서 했는데 분위기가 아늑했다. 그 위쪽 언덕배기에는 밤이면 공장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는 간이주점이 있다. 우리 일행이 유일하게 술을 사서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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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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