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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여름 실천문학사에서 발행한 비정기 간행물 <민중교육> 필화사건으로 수십명의 교사들이 해직되거나 징계를 받았다.(왼쪽·85년 8월8일치 <동아일보>) 책을 낸 실천문학사 주간 송기원(오른쪽)씨와 김진경·윤재철씨 등 3명은 구속당했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89년 전교조 결성의 예고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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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41
1980년대 교직사회의 암담한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어느 젊은 교사의 고백을 들어보자. “교과 시간에 새로운 지도법을 시도하고 싶어서 선배 교사와 의논했더니, ‘그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요.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이 조용해요’라는 답을 들었다. 그 선배는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을 강요당하며 지시에 따라야 했던 교단생활의 경험이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한테는 지적을 받았다. ‘선생님, 지금 창의적인 교육을 할 때입니까? 시험을 잘 치러서 우리 학교 점수가 올라가야 하는데 그런 실습을 해서 학력이 올라가겠습니까?’ 학부형한테서도 창의적 교육에 대한 항의 전화를 받았다.” 입시 위주의 비인간적 교육, 관료적 통제에 의한 비민주적 교육,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 등으로 생동감을 찾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 속에서 젊고 의욕있는 교사들의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교사는 보수 수준이 매우 열악해 대졸 남성들에게 별 매력이 없는 직종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경제위주 개발정책 이후 남학생들은 사범대를 기피하거나 사대를 졸업하더라도 대기업으로 진출하려 했다. 기업들은 인재를 모시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반면 박정희 정권은 교육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 학교는 점점 더 침체해 갔다. 그나마 광주·전남 지역에는 기업체가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교직으로 진출을 한 셈이었다. 교육현장의 모순을 체감한 뜻있는 교사들은 해결책을 고민하며 비공개 소모임과 와이(Y)교협, 글쓰기교육연구회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교사들의 순수한 열정은 공안사건으로 조작되어 각종 고문과 강제사직, 전보, 해임 등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남민전 사건(1979년), 아람회 사건과 부림 사건(1981년), 오송회 사건(1982년), <민중교육>지 사건(1985년) 등이 대표적인 교육계 공안조작 사건이다. 교육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선생님들은 84년 말 운동의 성과를 모은 공식 출판물을 기획했다. 교육현장을 고발하고 교사들의 다양한 실천사례를 소개한 부정기 간행물(무크지) <교육현장>(사계절출판사)과 <민중교육>(실천문학사)이 85년 4월과 5월에 각각 출판됐다. 두 책은 문화공보부의 납본필증을 교부받은 합법 출판물이었다. 두 책은 외국의 이론이 아닌 우리의 교육현실을 직시한 정책과 실천을 갈급하던 교사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경찰은 <민중교육> 출판기념회를 봉쇄·무산시키고 관련 교사들을 연행·조사했다. 이들을 ‘좌경용공’이라 몰아붙이며 검거했고 김진경·윤재철 두 선생님과 송기원 실천문학사 주간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관련 교사 20명 가운데 10명 파면(김진경·윤재철·유상덕·고광헌·이철국·이순권·심임섭·조재도·홍선웅·송대헌), 7명 강제사직(심성보·강병철·민병순 등), 2명 감봉, 1명 경고 조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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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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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교육지 사건’ 역시 송대헌 선생님이 86년 7월 제기한 경북도교육감 상대 파면취소처분 소송에서 대구고법은 “좌담이나 논설문 중에 다소 과격한 논리를 펴는 사례도 엿볼 수 있으나 … (중략) … <민중교육> 잡지 전체의 성격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반체제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파면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고, 88년 9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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