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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28일 연세대에서 기습적으로 창립식을 마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6월1일 노동부에 설립 신고를 하고 전국적인 지부·지회 결성에 나섰다. 당시 임시집행부 법규국장 이철국(오른쪽·현 대안중등 불이학교 교장), 교권국장 배춘일(왼쪽) 상임위원이 신고서를 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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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2
1989년 5월28일 결성된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는 시도 지부, 시군구 지회, 단위학교 분회 체계를 갖추기로 하고 지부·지회·분회 결성을 이어갔다. 광주에서도 6월7일 지부 결성에 이어 학교별로 분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나는 6월27일 직원회의 때 “오늘 오후 5시 음악실에서 효광여중 분회 결성식을 하겠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은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발표했다. 그날은 마침 <한국방송>(KBS) 광주지국의 라디오방송에 고정출연하는 화요일이었다. 직원회의와 학급조회가 끝나고 1교시 시작 전 방송 출연을 위해 나가려는데 장학사 몇명이 학교로 오고 있었다. 분회 결성 계획을 알린 직원회의가 끝나자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에 보고를 했고, 교육청엔 완전히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개의치 않고 차를 몰고 나가려는데 가정과 장학사가 몰고 들어오는 차와 교문 앞에서 마주쳤다. “정 선생, 어디 가세요?” “방송국에 가는데 왜요?” “나 정 선생 만나야 돼요. 나 따라갈게요.” 끝내 방송국까지 따라온 장학사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방송을 끝내고 나오니 그는 잠깐 차 한잔하자고 붙들었다. 내 차는 두고 자기 차로 이동하자고 해서 전혀 의심 없이 올라탔다. 그런데 방향을 순천으로 잡는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분회 결성식 때까지 나를 붙들어 창립을 막는 것이었다. 순천의 한정식집에 자리를 잡은 뒤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 정말 피곤하네….” 내 말에 장학사는 “피곤하면 그리 좀 누워.” 내 말의 참뜻을 짐작했으련만 엉뚱하게 받았다. “갑시다. 눕긴 어디 누워.” “아니 좀 쉬라니까. 나도 피곤하네.” 하긴 교육청의 임무를 띠고 온 그도 피곤하긴 할 터였다. 그가 먼저 눕기에 나도 옆에 눕는 시늉을 했다 일어났다. 그사이 장학사는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광주행 차가 바로 없어 10여분 기다리다가 탔는데 그 순간 장학사가 터미널로 쫓아왔다. 차에 올라타서는 내리라고 보챘다. “정말 피곤하게 하네요, 정말. 나 가야 되잖아.” “조금만 내려 봐요.” 내려서 잠시 멈칫거리고 보니 2시쯤 됐다. 분회 창립은 5시에 하기로 돼 있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동료 조합원한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순천까지 와 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장학사가 나를 끌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 조합원들에게만 조용히 말해서 안 하는 것으로 합시다. 교육 관료들이 감시하며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냥 기분 좋게 퇴근하시지요.” 일단 분회 결성식을 취소한 나는 느긋하게 광주로 돌아와 장학사와 무등산 신양파크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한 잔 더 마셨다. 방송국으로 돌아가 내 차를 몰고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5시30분쯤이었다. 그때까지 교장 선생님도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날 장학사의 집요한 방해로 우리 학교 분회 창립은 무산되었다. 촌극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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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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