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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광주지부장을 맡고 있던 1991년 5월12일 필자는 해직교사인 최종희·조희영 선생 부부의 결혼식에서 난생처음 주례를 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50대 중년 여성이 주례를 맡는 사례는 드문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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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65
전교조 광주지부장을 맡고 있던 1991년에는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일화가 있었다. 그해 5월12일, 난생처음으로 주례를 섰다. 신랑은 최종희, 신부는 조희영 선생님으로 사립학교인 진흥중학교에서 함께 해직되었다. 주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한번도 서본 적이 없는데…” 하며 주저했더니 “그래도 맡아주셔야 한다”며 완곡하게 요청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역시 사립학교에서 해직된 김병주 선생님이 “지부장님. 저도 주례를 맡은 적이 있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30대 후반의 젊은 교사가 언제 어떻게 주례를 했단 말인가.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주례가 갑자기 못 오시는 바람에 누군가 대신 맡아야 할 상황이 벌어졌고, 주위 친구들이 대신하라고 떠밀어서 얼떨결에 주례를 서게 됐다는 것이다. “나도 27살 때 주례를 했는데 지부장님이 왜 못해요. 하셔야 됩니다. 그거 간단해요.”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나는 “정말 인물들만 모였네” 하면서 주례를 맡기로 했다. 해직된 동지 두 사람이 미래를 약속하는 자리이다 보니 주례사가 얼마나 원만하게 되었겠는가. 처음 시작은 “둘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운을 뗐는데 나도 모르게 뒤로 가면서 “참교육 실현과 통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말하는 순간에도, 나중에 생각해 봐도 ‘양가 부모님들이 들으실 때 얼마나 어처구니없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주례사였다. 사실 첫 주례여서 내 나름대로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원고를 미리 썼었다. 그런데 주례사를 하면서 ‘참교육과 통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신랑·신부 집안은 큰 어려움 없이 사는 듯했지만 둘 다 해직된 상태이니 어려운 처지였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첫출발을 하는 자식들을 기대와 염려 속에 바라보고 있었을 부모님들에게 ‘통일 일꾼’을 들먹였으니, 생각할수록 낯이 화끈한 참으로 어설픈 첫 주례사였다. 7월에는 광주지역 교육위원 후보 논란이 있었다. 노태우 정권은 국민의 교육 개혁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의사(擬似) 개량화 정책으로 그해 91년 지방교육자치제를 실시했다. 88년 4월 시도 및 시군구에 위임형 의결기관으로서 교육위원회 설치를 규정한 교육법 개정안이 공포되었으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아 교육자치도 유보된 상태였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민자당은 2월 국회에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방교육자치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시도에만 교육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설치되었을 뿐 시군구 지역은 교육자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 교육위원은 지방의회에서, 교육감은 교육위원회에서 간선하도록 했다. 사실상의 주민 참여는 배제된 교육자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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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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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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