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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해직교사들은 1994년 3월 일괄복직 때까지 교문 밖에서나마 교과별 모임을 꾸려 수업방식과 교재 개발 등 참교육 실현을 위한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93년 11월 인천지부에서 ‘제1회 참교육 실천 사례 발표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전교조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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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87
사람 사는 어느 곳에나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사람이 꼭 있다. 대체로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1993년 무겁고 복잡한 복직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하던 시기 잊지 못할 아름다운 한 장면을 남겨준 선생님이 내겐 그런 사람이다. 10월15일 복직방침 수용 발표 뒤 우리는 현장 중심의 전교조 2기 출발을 준비했다. 11월7일 현직과 해직 조합원 7000여명이 단국대 체육관에 모여 ‘긴 호흡으로 의연하고 당당하게 국민에게 신뢰받는 교육 대안세력으로 중단없이 전진’하기로 결의했다. 이러한 선언을 하기까지 여러 단위의 회의에서 의견을 모았다. 그중 하나로 중앙집행위원회가 10월말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열렸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것으로 알려진 주지스님은 그날 처음 인사를 했는데 역시나 친절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마련된 방에서 밤샘회의를 하고도 논의가 끝나지 않아 이튿날까지 회의를 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산책을 나와 경내로 들어서니 젊은 스님이 대웅전 앞마당을 쓸고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 스님이 절집 마당을 쓸고 있는 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대웅전 쪽으로 가려면 그 마당을 지나야 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순간 충북지부장이자 젊은 시인인 김시천 선생이 그 자리에서 구두를 벗었다. 그러고는 구두를 양손에 들고는 꼿발(발꿈치를 든 자세)을 들고 마당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것이었다. 젊은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신발 신으세요” 한마디 했다. 그러자 김 선생은 딱 멈춰 섰다. “점잖지 못하게…신발 신으세요.” 젊은 스님이 정색을 하며 또 한마디 던졌다. 김 선생은 아무 대꾸 없이 들고 있던 구두를 내려놓고는 발을 털고 신발을 신은 뒤 조용히 지나갔다. 한 편의 시였다. 나는 김 선생의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감동스러웠다. ‘아! 참 깨끗한 성품을 가졌구나!’ 그런 인품을 가진 교사가 전교조의 지역 지도자로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하면서도 깊은 정이 느껴졌다. 이런 아름다운 선생님들을 ‘불법단체 조합원’이라고 해직시킨 군부독재가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불법정부가 아니었던가. 90년대 전교조가 꾸준하게 펼쳤던 사업 중 하나는 학생들을 위한 5월 교육주간 행사였다. ‘총과 칼 등 폭력적인 장난감 없애기’나 ‘유해환경 척결운동’이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폭력적인 환경이 학생들의 심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충북지부는 93년 어린이날 학생들에게 금붕어를 나눠줬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 총이나 칼을 비닐봉지에 넣은 예쁜 금붕어와 바꿔주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잘 키우라는 뜻도 담은 일종의 환경보호 교육사업이었다. 그래서 나눠준 데 그치지 않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지부에서 확인을 했다. 많은 아이들이 잘 키우지 못해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자 지부는 사업평가를 거쳐 이듬해 어린이날에는 꽃을 심은 화분을 나눠주었다. 물론 장난감 총과 칼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는 폭력적인 장난감이 주는 해로움을 설명해서 되도록 가지고 놀지 말도록 했다. 전체회의 때 지부별 사업보고를 들으며 나는 참으로 감동을 받았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후배 교사들의 노력이 고마웠다. 비록 우리 사회가 오랜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심성이 거칠어지기도 했지만 미래세대들에게는 직간접적인 교육을 통해 바른 심성을 갖게 하려는 노력이 비단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김시천 선생의 시 ‘아이들을 위한 기도’에는 그런 선생님들의 바람이 그대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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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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