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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2월부터 10월까지 참교육 운동에 목숨을 바친 전교조 동지들의 묘소를 둘러보는 순례를 했다. 사진은 그해 9월8일 전북 남원의 인월에 있는 김철 선생 묘소를 참배한 모습. 오른쪽부터 이귀님 고 윤영규 위원장 부인, 필자, 임추섭 전 전교조 전국감사위원장, 이영희 4대 전교조 위원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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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07 마지막회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무덤에서 요람까지 그리고 깨어 있는 모든 시간 동안에 인간은 교육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교육자는 인간관계이다”라고 했다. ‘길을 찾아서’의 긴 글을 마감하며 많은 분들과의 인연을 생각해본다. 1999년 7월1일, 정년퇴임 한달을 앞두고 전교조가 출범 10년 만에 합법화됐다. 그 무렵 <사회평론>에 이어 월간 <사회문화리뷰>를 발행하던 정진백 사장이 교원노조 합법화와 정년퇴직에 즈음한 책 발간을 권유했다. “하늘을 나는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을 구실 삼아 사양했다. 그러나 정 사장의 계속되는 요청을 받아들여 11월1일 <참교육의 함성>(1, 2권)을 상재하였다. 박현서·이규환 지도자문위원님을 비롯한 50여명의 필자들, 초상을 그려주신 강연균 화백, 최진우 선생, 시를 써주신 송수권·도종환 시인에게 새삼 감사를 드린다. 또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준 고 김찬국 총장, 김근태 의장, 권영길 의원, 박영수 전 광주은행장, 서옥렬 선생님, 고 류낙진 선생님, 김귀식 전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동지들 그리고 실무에 애써준 이형석 전 광역시의회 의장, 남평오 비전한반도포럼 대표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다시 전한다. 2009년 2월9일부터 10월16일까지는 참교육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전교조 동지들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영희(4대 전교조 위원장)·이귀님(고 윤영규 위원장 부인)·임추섭(전 전교조 전국감사위원장) 선생님과 함께했다. 경기도의 이상선 전 교장선생님도 늦게 합류했다. 가는 곳마다 전교조 지부와 지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참 고마웠다. 마지막 참배지는 문태호 강원지부장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원영만 전 전교조 위원장의 안내로 황시백 선생님의 묘였다. 수목장 형식의 화단에 낮은 돌에다 ‘글과 그림’이라는 글씨가 묘비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모두 60여명의 고인 가운데 40명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교사가 37명, 학생이 3명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교육운동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기어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 마치 성지순례를 마치고 난 밤처럼 인천에서 강원도로 학교를 옮긴 조용명·노미화 선생님 집에서 오랜만에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양양에서 함께 마을을 이루고 사는 김경희(고 황시백 선생 부인)·김상기·정양언·이용희 선생님과의 만남도 뜻깊었다. 지난여름에도 사회민주화와 참교육 실현을 위해 참으로 열심히 노력해왔던 유상덕·박순보 후배 동지들이 제대로 뜻을 펼쳐내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 몹시 마음이 아프다. 오는 26일은 전교조 재판 2심 선고일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출입 46년째가 되는 대한교육신문사 김병옥 편집국장은 교총신문사와 새교육신문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지에서 고생하는 교사들의 심부름꾼이 되어주고자, 또 권력으로부터 홀대받으면서도 좋은 기사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언론인으로서 머리가 하얗게 센 지금까지 당당하게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 교육계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소중한 노기자는 22년 전 89년에 해직된 전교조 선생님들의 원상회복을 위한 법정에서 다른 증인들과 함께 양심적인 증언을 해주신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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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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