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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12일 평양을 방문했던 게리 애커먼 미 하원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 일행이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으로는 처음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가 김일성 주석을 만난 대화록에는 흥미로운 정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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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48
1993년 10월 웃지 못할 소동이 한가지 있었다. 당시 미국 하원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당 하원의원인 게리 애커먼이었다. 그는 10월9일부터 12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과 면담했다. 미국 소식통들은, 김 주석이 애커먼 의원에게 흥미롭고 솔직한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김 주석은 ‘미국인 중에는 북한 사람이 머리에 뿔 달린 귀신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더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북한은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도 살 돈도 없으며, 핵무기를 가질 필요도 그럴 의지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주석은 또 앞서 4월에 발표한 ‘10대 강령’에 친필 서명을 한 뒤 애커먼에게 주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 강령을 읽지 않은 유일한 사람 같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한 부를 남쪽 당국에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사실 ‘10대 강령’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김 주석이 그 사본을 선물로 주면서 김 대통령을 비꼰 것은 지난봄 조동진 목사와 만났을 때 ‘김 대통령 각하’로 부르며 깍듯이 예우했던 것과는 다른 태도였다. 12일 평양에서 판문점을 넘어 곧바로 서울로 온 애커먼 의원은 13일에 나와 만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오전 10시 약속 시간이 되도록 그는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찰스 카트먼 주한 미 부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최대한 점잖게 불쾌감을 표했다. 카트먼은 지난 7월 내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레이니 주한 대사 지명자와 함께 만난 적이 있었다. 오전 11시20분에야 애커먼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했다. 그 뒤 한달쯤 지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의 한 행사에서 애커먼 의원은 <한국일보> 기자에게 “당시 한완상 부총리와 약속을 취소하는 등 한국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절대로 의도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뉴욕에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방북 때 애커먼을 수행했던 케네스 퀴노네스 국무부 북한담당관이 나중에 전해준 김 주석과의 영문대화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여럿 나왔다. 김 주석은 자신의 10대 강령이 김 대통령의 취임사보다 먼저 작성되었다며, 아마도 자신의 이 통일 관련 제안을 참고해 취임사를 작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전해들은 이야기와는 사뭇 달랐다. 또 취임사 가운데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부분에서 동맹국이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취임사를 작성할 때는 ‘동맹국은 변수이나 민족은 상수’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북한의 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을 지칭한 표현이었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그 동맹국을 미국과 일본으로 ‘오독’하고 내게 맹공을 퍼부었는데, 정작 김 주석은 ‘동맹국이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했다니 또한 의아한 노릇이었다. 김 주석은 애커먼에게 다른 농담도 했다. 애커먼이 비무장지대를 넘어 서울로 갈 텐데 이 행위는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임수경을 예로 들었다. 임수경은 남한 당국에 체포되어 감옥에 갔는데, 애커먼이 국경을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만일 당신이 감옥에 안 간다면 남한 당국이 미국인을 보통사람보다 더 높은 존재로 대접하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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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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