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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7 20:07 수정 : 2012.08.07 20:07

1993년 12월24일치 <한겨레>의 ‘아침햇발’에 실린 삽화. 당시 정연주 워싱턴 특파원의 칼럼에 곁들인 그림으로, 문민정부를 떠나게 된 필자의 처연한 심정을 대변하듯 묘사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63

1993년 12월21일 개각으로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에서 물러나자,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 진보적인 대북정책을 고집해서 교체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반대로 나의 경질을 고소해하는 사람들은 “거봐라, 감상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니 그렇게 되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특히 김관석·박형규 목사는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외로울 때 재야에서 열심히 도왔던 분들이니 그랬을 것이다. 나는 좌파니 진보적이니 하는 평가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북한을 인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정신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려 했을 뿐이다.

사실 내가 국무위원 자리를 떠나게 된 것은 대북정책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김 대통령은 황인성 총리를 포함해 국무위원 8명을 교체했다. 농산물 개방으로 전국의 농민들이 분노했고 거센 저항을 하자 이 저항을 정치적으로 ‘한방’에 꺾고자 대폭 개각을 단행한 것이다. 김 대통령 특유의 위기 극복 방식이었다. 그런 점은 ‘양김 대통령’이 다른 점이 없었다. 정치위기 때마다 각료들의 목을 날리는 행태는 따지고 보면 전형적인 비민주적 정치 행위이기도 하다. 각료를 동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판의 졸로 보는 것이다. 정치적 후진성의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햇볕론적 대북정책을 반대하는 대북 강경론자들의 입김이 내 경질에 작용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박관용 비서실장은 내게 개각 소식을 미리 알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순전히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일부 보수언론의 이간질도 한몫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반공적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모친이 한국전쟁 때 공산주의자의 손에 사살된 탓에 그의 반공 의식은 철저했다. 그렇다고 교조적 반공주의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대북관이 지나치게 친북적이라고 못마땅해하는 측근들의 영향을 계속 받다 보니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조직적으로 나를 폄하하는 일들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수백통의 편지가 청와대로 날아들었을지도 모른다. 후임 통일부총리로 발탁된 인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북한 출신의 완강한 반공주의자인 이영덕 박사였다. 그가 내 후임이 되는 것을 보고 대통령 가까이 있는 반공주의자들의 작품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것이 이 정부의 구조적 한계요, 문화적 한계인 것을.

정부를 떠나면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가 예전에 나에 대해 “김영삼 정부의 피뢰침”이라고 했던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좌파든 우파든 사실 멋지고 훌륭한 대통령은 정부에 지나치게 심한 비난이 쏟아질 때 그에 맞서 스스로 피뢰침 구실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의 기품있는 지도력에 감동을 받고 아랫사람들이 충성스럽게 보필하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1993년 크리스마스는 나 개인에게는 평안을 주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아직도 평화가 멀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앞으로는 더 멀어질 것만 같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충만했던 의욕과 감동이 1년 만에 깡그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 좌절과 불안이 자리를 잡았다.

한완상 전 부총리
크리스마스 전날 <한겨레> 정연주 워싱턴 특파원의 ‘아침햇발’ 칼럼이 나를 더 울적하게 했다. 21일 개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긴 그의 글에는 강한 분노가 배어났다. “한완상 전 부총리 등은 김영삼 정권의 이미지 창조를 위한 화장품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제 화장품으로서 그의 효용가치가 다하자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참혹한 꼴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그것이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참담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특히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 언론과 보수파들의 음산한 호전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번 개각으로 조그만 진보적 목소리조차 사라지게 됨으로써 앞으로 한반도가 또 어떤 긴장과 소모성 대결을 경험해야 할지 암담하다.”

이 칼럼의 ‘화장품’ 비유는 레이니의 ‘피뢰침’보다 더 혹독한 비판이었다. 조국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칼럼에 곁들인 삽화마저도 처연했다. 한반도 지도를 두 손 위에 올려놓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처량하게 바라보는 내 모습이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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