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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0 19:31 수정 : 2013.05.20 19:31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

1951년 한국전쟁 와중에 피난 내려와 인천 화수동에 정착한 이총각의 어린 시절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난민의 삶이었다. 살림살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어서 겨우 죽이나 끓여 먹을 냄비때기 하나가 있었을 뿐 취사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식수는 세관창고 옆에 있는 우물에서 길어 와 먹었지만 빨래는 창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먹는 게 제일 문제였다. 짐승들에게나 먹이는 밀기울을 빻아서 쌀과 보리를 조금씩 섞어 끓인 밥은 입안이 깔깔해서 도무지 목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도 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허술하게 쳐놓은 천막 안에 가마니를 깔아놓은 바닥에서 남동생을 낳아야 했던 어머니의 기억 속엔 더 많은 절박한 풍경이 자리잡고 있을 터이다. 그 귀한 아들을 품에 안았지만 원없이 이팝 한번 먹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 했을 만큼 한 줌의 곡기도 입에 넣기 힘든 시절이었다.

화수부두는 바닷가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피난민들로 북적이며 차츰 항구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이런저런 일자리가 있을 법도 하건만 총각의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절어 살았고, 어머니는 새우젓 장사에 남의 집 일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래도 키가 크고 덩치도 있던 어머니는 천성이 단순하고 낙천적이어서 늘 씩씩했다.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는 놀거리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총각은 팬티만 입고 바다로 뛰어들어 개헤엄을 치며 놀던 일이 그 무렵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해삼과 흡사한 ‘밍게비’도 주워 먹고, 조개를 캐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훗날 자라서 동일방직에 들어가서도 근무가 없는 날에는 바닷가에 나가 조개며 소라를 주워 팔기도 하고 맛난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친구들과 여름 밤바다에 나가 달빛에 반짝이는 게들을 보고 환호성을 올리며 웃고 수다를 떨던 때를 떠올리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지금은 매립이 되어 없어졌지만 친구들과 함께 송도까지 갯벌을 따라 걸어가 발밑에 밟힐 정도로 많았던 모시조개를 한 자루씩 주워서 머리에 이고 돌아오기도 했다.

총각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화수동에서 만석동 6번지로 이사를 하게 된 건 그나마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진 덕분이었다. 그래 봤자 비슷한 천막촌으로 들어가는 거였지만 그래도 다른 가족과 구분이 되도록 칸막이가 있었고 밥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부엌 공간도 만들 수 있었다. 가마니가 아닌 왕골로 만든 바닥도 훨씬 부드러워 제법 누울 만했다. 먹는 건 여전히 부족해서 값싼 양배추나 부추를 사다가 멀겋게 국을 끓여 냄비째 놓고 다 같이 퍼먹었다. 그러니 늘 허기가 졌던 아이들은 숟가락을 빨며 놓을 줄을 몰랐다. 말씀은 안 했지만 그런 자식들을 보며 어머니는 아예 배를 곯은 날이 많았을 터였다. “엄마, 우리 만석동 살 때는 조그만 단칸방에 가로세로로 포개지다시피 살았는데 지금은 궁궐에서 사는 것 같아. 먹고 싶은 거 얼마든지 먹고….” 총각이 옛이야기를 꺼낼 때면 어머니는 더 보탤 말이 없다는 듯 고개만 끄덕끄덕한다.

그 시절 만석동을 떠올리면 석탄을 훔치려다 들킬 뻔한 일이 지금도 마음을 졸이게 한다. 당시엔 부둣가에 외국에서 들여온 석탄이 쌓여 있었다. 그걸 기차로 실어 나르는지 기차역 주변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워만 모아도 쉽사리 한 포대가 됐다. 그런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쌓여 있는 석탄을 조금씩 훔쳐내 팔기도 했다. 어느날 밤엔 어린 총각도 한몫을 할 셈으로 언니를 따라나섰다. 조그만 손으로 얼마 되지도 않는 석탄을 윗옷 앞섶에 넣고 돌아서는데 어떤 아저씨가 뒤쫓아 나왔다. 몰래 훔치는 일 자체가 떨리고 긴장되는 일인데 들키기까지 했으니 너무 놀라서 죽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로 인해 치도곤을 당한 기억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일이다.

어린 총각은 어리광 피울 새도 없이 애어른이 되어갔다. 그 여린 몸으로 네 살 터울의 남동생과 그 밑에 태어난 여동생을 늘 챙겨야 했지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엄마를 대신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총각의 언니 역시 동생들을 위해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돈 벌러 나가야 했고, 엄마를 대신해 감당해야 할 집안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언니가 잠깐 남의 집 식모살이를 갔다가 이내 돌아와, 집에서 멀지 않은 동일방직에 들어가자 모두들 기뻐했다. 대신 그만큼 총각이 감당해야 할 집안일은 늘어났다. 당시에 동일방직은 다른 공장에 비해서 시설도 좋고 점심도 주는 곳이어서 모두들 선망하는 직장이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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