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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남쪽 최대 도시 카라치의 대표적 빈민촌 굴샤네자울에 사는 나지마(오른쪽)가 지난 4일 딸 유스라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식량난을 토로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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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0돌] 지구촌 식량위기 농업을 다시 본다
1973년 옛 소련의 흉작으로 비롯된 제1차 곡물 파동에 이어 2008년 또다시 곡물값 폭등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이제 값싼 식량 시대는 끝났다. 이는 세계 25억 이르는 빈곤계층에 재앙적 결과를 의미한다. 지난 20여년 농업을 생산자인 농부가 아닌 거대한 국제 곡물상 등에 맡겨온 세계화가 이제 세계 식량위기라는 시험대 앞에 섰다. ‘풍요 속의 빈곤’ ‘조용한 해일’로도 불리는 세계 식량위기에서 한반도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앞으로 일곱 차례 걸쳐 세계 식량위기의 현상과 원인을 진단하고, 한국 농업의 대안을 찾아본다. 빵에 소금 먹으며 연명인구절반이 식량불안 지난 4일 오후 아라비아해를 끼고 있는 파키스탄 남쪽 최대 도시 카라치의 대표적 빈민촌 굴샤네자울. 이곳에서 만난 파잘라만(11)은 학교에 있을 시간이지만 하루 내내 집에서 놀고 있었다. 파잘라만은 엄마와 누나 셋, 형 하나 등 모두 여섯 식구가 좁다란 월세 단칸방에 서 가장인 홀어머니 나지마(42)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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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수도 마닐라 10번가 바랑가이에서 지난 1일 아날리사(왼쪽)가 한살배기 딸 아르셀에게 손으로 밥을 먹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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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와 가뭄으로 빈부의 구별 없이 굶주림을 겪던 과거의 식량위기와 달리 가격 위기에서 시작된 이번 세계 식량위기는 ‘풍요 속의 빈곤’으로 불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식량값이 3분의 1 상승하면 부국의 생활수준은 3% 떨어지지만, 가난한 나라는 20% 하락한다”고 지적했다. 주식 가격의 급상승은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하기 때문이다. 알그하심 우리에 세계식량계획(WFP) 필리핀 소장은 “식료품비가 많게는 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계층에게 식량값의 상승은 충분한 음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동쪽으로 6천㎞ 떨어진 인구 9천만명의 필리핀도 파키스탄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 1일 마닐라 톤도 10번가 바랑가이(동)에서 만난 엔리케 에스파뇰라(39)는 마늘 까는 일로 생계를 잇는다. 온 가족이 하루 최대 37㎏의 마늘을 까 150~200페소(3천~4천원)를 벌어 여덟 식구의 생계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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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나지마 가족/ 필리핀 엔리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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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끼서 두끼로 줄이고
고기는 구경한지 오래 하지만 올해 들어 생활이 팍팍해졌다. 22페소였던 쌀 1㎏이 지금은 31~34페소로 껑충 뛰었다. 하루 세 끼에서 두 끼로 줄였고 아침은 꽈배기 같은 빵으로 때운다. 고기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엔리케의 부인 아날리사(37)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식구들의 식량인 쌀 3kg을 사놓고, 밑반찬용으로 붕어새끼를 말린 ‘토요’를 산다”며 “식료품에만 수입의 70~80%를 쓰고, 나머지는 치약·비누·커피 등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엔리케 가족을 포함해 필리핀 전체 인구 가운데 약 3천만명이 최근 주식인 쌀값 인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즈유키 쓰루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소장은 “지난해 필리핀에서 쌀을 제대로 구입하기 어려운 월 5천페소 미만의 수입을 지닌 계층이 전체 인구의 25~30% 미만이었는데, 최근 쌀값 상승으로 그 비중이 35%안팎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WB)은 ‘2008년 세계 경제 전망’에서, 2004년 기준으로 전세계 25억명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사는 극빈층이며, 이 중 18억명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 있다고 밝혔다. 쌀과 빵을 사는 데 수입의 절반 정도를 써야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값 상승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앙’이다. 수바 라오 인도 재무장관은 지난 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에서 “식량값이 20% 오르면 아시아의 절대빈곤 인구는 1억명씩 늘어난다”고 말해, 식량값 상승이 신빈곤층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도 최근 곡물값 상승으로 전세계 1억명의 인구가 추가로 굶주림과 영양실조의 위험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마닐라 카라치/류이근 김기성 기자 ryuyigeun@hani.co.kr
‘위기국가’ 21억명 중 아시아 16억명 2년간 밀 183%·옥수수 133% 올라 세계 식량 위기는 2006년 밀·옥수수·콩·쌀 등 국제곡물가 급등으로 시작돼 전지구적 비상사태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밀의 국제선물가격은 2년 전보다 182.9%, 옥수수는 지난 2년간 132.9%가 급등했다. 대부분 아시아에서 거래되는 쌀값도 폭등했다. 타이산 쌀의 국제거래가는 2003∼2005년 t당 201∼291달러의 안정세에서 지난 1월 380달러, 그리고 지난달 853달러로 치솟았다. 최근 석 달 사이에만 122%가 올랐다. 최근 2년간 곡물가 폭등에 대해 제임스 모리스 조셋 시런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모든 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조용한 쓰나미’”라고 말했다. 그는 15일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서 열린 세계 식량 위기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식량 위기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인도적 비상사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식량값 폭등의 여파는 저개발국가로 집중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아시아와 아프리카 31개국 등 전세계 37개국(인구 21억명)을 ‘위기국가’로 지정했다. 아시아에서는 북한 등 10개국 16억명이 식량 위기에 부닥쳐 있다. 이는 아시아 전체 인구 37억 중 46%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밀가루 배급 행렬 길어져 불안” ‘월드비전 파키스탄’ 그레이엄 스트롱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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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함 스트롱(39·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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