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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5 18:24 수정 : 2006.02.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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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 일본 외상이 얼마 전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는 망언을 했다. 전후 극우파 망언의 뿌리를 알려면 1945년 8월15일 정오에 방송된 일왕 히로히토의 ‘종전조서’(대동아전쟁 종결에 관한 조서)를 봐야 한다. 일본 문학평론가 고모리 요이치의 책 <1945년 8월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이런 뿌리캐기 시도다.

조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 그리고 ‘패전’이 아닌 ‘종전’의 범위를 분명히 제한하면서 궤변을 펼친다.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까닭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었다.”

또 조선·중국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채 동아시아 침공을 ‘해방’이라고 거듭 왜곡한다.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왜곡의 압권은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 이로써 만세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는 대목이다. 히로히토가 전범이 아니라 평화의 수호자라도 되는 듯하다.

당시 프랑스 언론인 로베르 길랭은 조서가 “옛 군인들이 자기 좋을 대로 역사를 다시 쓸 기회”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고모리도 “이미 ‘종전조서’에서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면하게 하기 위해 역사를 날조하는 방향으로 주도면밀한 포석이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종전조서’의 왜곡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민중의 평화와 화해가 걸린,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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