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2 21:14
수정 : 2006.02.22 21:15
유레카
세종 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민대생이 나이 아흔을 맞았다. 조카, 손자한테서 세배를 받는데, 한 사람이 백세까지 장수하시라고 했다. 그는 “십년밖에 더 살지 말란 말 아니냐”며 화를 내고 절한 사람을 집 밖으로 쫓아냈다. 다음 사람이 “백세를 향수하시고 또한번 백세향수 하십시오” 하자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오래 사는 게 늘 축복만도 아니다. 그리이스 신화에는 쿠마이의 무녀인 시빌레 얘기가 나온다. 올림포스 열두 신의 하나이면서 숱한 염문을 남긴 아폴론은 그에게도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환심을 사고자 아폴론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시빌레는 손에 한 웅큼의 모래를 쥐고 모래알 수만큼 수명을 내려달라고 한다. 아폴론은 그가 말한 대로 천년을 살게 했다. 그런데 시빌레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 젊음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말을 빼먹었다. 천년의 수명은 구애를 뿌리친 그에게 아폴론이 한 앙갚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늙고 쪼그라들었다. 시빌레는 끊임없이 “죽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
2004년 한 해 한국에서 1만3293명이 자살했다. 61살 이상인 고령자가 31%에 4220명에 이른다. 노인 자살률은 지난 20년 사이에 다섯 배로 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아졌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이 고단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노인들의 고단함을 돌보지 못하는 우리의 복지 수준을 말해준다.
양극화와 복지정책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노령인구 10명 중 8명은 노후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성장도 좋지만 성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그늘은 복지 정책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돈이 들고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 사연은 다르다 하나, 시빌레처럼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이들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외면할 건지.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