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05 18:55 수정 : 2006.03.05 18:56

유레카

검찰이 최종 수사발표를 남겨둔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드러난 논문조작은 흔한 일이다. 1973~2005년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 중 672건이 취소됐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87년 이후 취소된 논문만 553건으로 최근 들어 부정이 더 심해졌다. 취소 논문의 253건, 45% 이상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독일(49건), 영국(42건), 일본(35건)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7건으로 13위였다. 선진국의 ‘학문적 정직성’도 그리 높이 평가할 것이 없다.

정작 황 교수 사건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사건’으로 회자된 것은 그가 몰고온 애국주의라는 사회적 현상 때문이다. 직설적 인물탐구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그가 ‘한국에서 사회적 리더십을 보여준 최초의 과학자’라고 평했다. 황 교수 지지자들은 한국 최초의 진정한 우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국 우익들이 필수요소인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결한 사대주의자였음을 비꼬는 말이다. 최근 한국에는 새로운 경향의 우익들이 백화제방이다. 사회세력으로는 ‘뉴라이트’가, 학문적으로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황 교수와 공통점이 있다. 황 교수가 연구보다는 인터뷰나 사람 관리에 주력한 것처럼 본업보다는 언론 등과의 대외관계에 치중한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주도한 연구자들은 이 책의 비판대상인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사관만 있고, 사실이 없다’며 보수언론들과 인터뷰에 한창이다. 사실검증 없이 좌익 사관으로만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그들의 연구목적이 사실검증인지 아니면 특정 책에 대한 공격인지 헷갈린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실검증을 위해서라면, 그 시간에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학자적 모습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관만 있고, 사실이 없다’는 비판은 그들에게 해당된다. 황 교수는 연구가 아니라 대외활동만 하다 나락에 떨어졌다.

정의길 국제팀장 Egil@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