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7 18:35
수정 : 2006.05.07 18:35
유레카
한 세기 전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등 주도세력은 탈아입구론을 주창하며 서양 배우기에 온몸을 던졌다. 주한 공사였던 이노우에 가오루는 인종적 개조까지 주장했다.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일본은 서양 문물 도입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지 않았다. 서양 문물을 충분히 ‘일본화’하는 데 힘을 쏟아 대중들도 흡수할 수 있었다. 문화·철학·사회·과학 등의 단어도 일본이 서양 문물을 도입하며 만들어낸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의 한 척도라는 영어 구사력에서 일본 대중이나 지식인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나, 국가경쟁력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붐인 인도의 경쟁력으로는 영어가 꼽힌다. 100년도 넘은 사실이고, 선진 서양 문물에 대한 접촉도 인도가 일본보다 한 세기나 이르다. 하지만 인도의 국가경쟁력은 여전히 가능성이고, 아직 지독한 저개발에 시달린다. 영어가 그 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많다. 인도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비율은 인구의 7%,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포함해도 10% 정도다. 쉽게 얘기해 1억명의 영어인구와 10억명의 비영어인구로 나뉘어 있다. 영어를 통해 선진문물과 지식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상층계급은 굳이 이를 인도에 맞게 대중화할 필요가 적었다. 비영어인구는 소외되고, 영어인구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언어가 사고의 도구임을 감안하면, 영어를 쓰는 상층계급이 서양과 다른 독창적 사고를 할 여지도 적다. 인도 전체로서 국가경쟁력이 빈약했던 배경의 하나이다.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들이 전공강의 중 영어강의 5개를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하는 학교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들은 “영어 구사력과 기능적 지식 습득만 강조하는 정책은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양성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국문학 강의도 어설픈 영어와 썰렁한 침묵으로 진행되는 장면은 한국을 일본과 인도 중 어느 쪽으로 이끌 것인가?
정의길 국제팀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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