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9 20:51
수정 : 2006.05.29 20:51
유레카
유력한 세계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부시의 (애완견) 푸들’ 소리를 맨 먼저, 그리고 줄기차게 들은 이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동아시아의 블레어’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일찍이 ‘오늘의 일본이 있게 한 것은 관대한 미국의 특별한 은혜 덕’이었다고 공언한 그는 일본을 극동의 영국으로 만들겠다는 미국 네오콘 전략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였다. 다음달 말 그의 방미 때 미국은 대통령 전용기까지 동원해 대대적으로 환영할 모양이다. 얼마 전 후진타오 중국 주석 방미 때와는 딴판이다.
다만, 지난 3월 타결된 미-인 핵협력협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달라는 부시 정권 쪽 요구가 고이즈미를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은 인도의 핵 개발과 이용을 미국이 적극 지원하겠다는 이 협정에 대해서는 조약 체제 자체를 무력화할 부도덕한 패권전략의 전형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기야 핵 재처리와 플루토늄 다량 보유 등 이란·북한은 물론 한국에도 허용되지 않는 ‘핵 특권’을 누리는 일본 아닌가.
쿠데타로 등극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서남아시아의 블레어’였다. 그런 그가 중국 쪽으로 기울더니 4월 말 천연가스 도입 파이프라인 건설을 이웃 이란과 합의하는 등 미국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영국 〈가디언〉과의 회견에서 그는 “나는 누구의 푸들도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인도와 비슷한 핵 협력을 부시에게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무샤라프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값싼 푸들을 잃더라도 비싼 푸들을 얻으면 미국으로서야 손해볼 게 없다. “미국이 53년 전 도와주지 않았다면 오늘날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는 과격(?) 발언까지 감수했으나 냉대받고도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르는 노무현 정권의 속셈은 뭘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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