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7 18:13
수정 : 2006.07.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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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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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93년 미국 유명 록그룹 너바나가 대표적인 유통업체 월마트, 케이마트와 마찰을 빚었다. 너바나의 음반 〈자궁 안에〉의 뒤표지와 머릿곡 ‘나를 겁탈하라’가 ‘가정 지향적인’ 매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두 업체가 판매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너바나는 표지를 바꾸고 머릿곡의 제목만 바꾼 음반을 따로 내놨다.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너바나도 유통망을 무기로 한 월마트 등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대표적인 ‘기업 검열’ 사례로 알려져 있다.
유통업체의 개입은 그 이후에도 종종 벌어졌다. 캐나다 케이마트는 97년 영국 그룹 프로디지의 음반이 매장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판매를 거부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는 듯한 노래가 말썽이 됐다. 프로디지 또한 수정 요구를 받아들였다.
미국 비디오 대여 시장 점유율이 25% 정도인 체인점 블록버스터는 17살 이하 관람 불가 등급 영화는 다루지 않는다는 정책을 유지한다. 〈예수의 마지막 유혹〉처럼 논란이 되는 영화 또한 잘 취급하지 않는다. 거대 유통업체의 이런 정책은 영화계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캐나다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은 〈노 로고〉라는 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의 결정은 비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월마트나 블록버스터의 검열에 대체로 만족한다. 그들의 결정이 정치적인 제스처임이 명백할 때조차도, 기업이 단지 비즈니스적인 결정을 내린 것뿐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이 이동전화 무선인터넷에서 성인물을 없애기로 한 데 이어 경쟁 업체들도 같은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성인물이 너무 음란하다는 여론을 의식한 조처다. 이런 업계의 자율 규제가 확산되다 보면 자칫 검열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자율 규제에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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