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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7 18:38 수정 : 2006.08.07 18:38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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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인구 35만 가운데 그해 말까지만 14만명이 숨졌다. 16만명이란 통계도 있다.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 다시 원폭이 떨어져 24만 중 7만명이 희생당했다. 이 가운데 피폭자도 적지 않았다.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나가사키로 갔다가 다시 피폭당한 경우다. 직접 당하지 않더라도 투하일로부터 2주가 지나지 않은 시기에 피폭지역에 들어가면 잔류 방사선 때문에 피폭당하게 된다.

지난 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히로시마 61돌 원폭사망자 위령식·평화기념식에 참석한 뒤 말했다.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된다. 전몰자에 대한 애도의 염을 표하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그의 집착은 거기서도 바뀌지 않았다. “언제 (야스쿠니에) 가더라도 괜찮겠지만 적절히 판단하겠다.”

하루 전인 5일 그는 야마구치현 하기에서 요시다 쇼인의 족적을 더듬고, 전날엔 시모노세키에서 요시다의 제자이자 메이지유신의 영웅 다카스기 신사쿠의 묘를 찾았다. 요시다는 오키나와와 조선을 먹고 중국을 제압한 뒤 인도로 진격하라고 부르짖었던 원조 정한론자다.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 다로, 이노우에 가오루,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 수다한 조선침략 선봉장들이 그의 직계 후예들이다. 야마구치의 옛이름은 조슈이고, 차기 총리감 아베 신조 관방장관과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향리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인에겐 ‘길이 빛날 청사’이겠지만 이웃나라들엔 치욕이었으며, 근대 일본의 전쟁범죄는 바로 메이지유신과 함께 시작됐다. 원폭 피해자 추도일을 맞아 그 메이지유신 본고장에 가서 요시다 쇼인을 기리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두 번 다시 전쟁해선 안 된다’고 한 고이즈미 총리의 진짜 속내는 뭘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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