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5 21:08
수정 : 2006.08.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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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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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한국에선 어떤 말과 글을 쓰지요?’ ‘우리 말이 있고, 고유의 문자 한글도 있습니다.’ ‘정형시도 있나요?’ ‘물론이죠, 1천여년 된 시조가 있지요.’”
시인 이근배씨가 그리스에서 겪은 이 경험은 특별한 건 아니다. 유럽에서 자신을 문인으로 소개하면, 곧 바로 이런 물음을 받기 일쑤다. 그만큼 유럽에서 정형시는 문화적 수준을 재는 잣대가 된다. 세계에서 고유의 정형시를 갖고 있는 겨레가 10여 족속뿐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본의 와카와 하이쿠, 중국의 절구 및 율시, 이탈리아·영국·프랑스·독일의 소네트, 프랑스의 론도, 영국의 오드가 여기에 포함된다.
일본의 하이쿠는 세계 50여 나라 대학에서 가르칠 정도로 세계화됐다. 기초과정에서 국민 교양으로 하이쿠를 가르치고, 국적항공사 일본항공은 하이쿠와 와카 영역본을 기내에 배치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한 결과다. 이에 견주면 우리는 참으로 민망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이었던 우리는, 한국의 책 100권을 선정하면서 시조 서적은 1권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1500여년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고 전달해온 시조가 만화 〈일지매〉만도 못했다. 한국문학을 소개할 문인 62명에도 시조시인은 없었다.
지난 12일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선, 현대시조 신작가곡음악회 ‘겨레의 노래, 천년의 노래’가 열렸다. 〈가고파〉 〈사랑〉 〈성불사〉 등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중화하려는 시도다. 문화예술위원장 김병익씨는 시조를 “위대한 한글이 빚어낼 수 있는 민족시의 진수”라고 했다. 〈비슬산〉(조오현 작시) 등은 그것이 허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비슬산 구비길을 스님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 나는 걸까// 거문고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듯 끊인 연(緣)을/ ….”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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