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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2 18:40 수정 : 2006.09.12 18:42

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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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존 에프 케네디가 뉴 프런티어를 제창하고, 거리에선 마틴 루서 킹이 인권의 깃발을 높이 흔들 때, 탄광촌 출신의 시골뜨기 로버트 앨런 지머만의 포크송은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휩쓸고 있었다. “…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이미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달을까, 친구여 …”(바람만이 아는 대답)가 수록된 첫 음반 〈밥 딜런의 프리휠링〉(1963)은, 그를 일약 반전의 신화로 만들었다.

케네디 피살과 베트남전 확전으로 상황이 절망적으로 반전하던 1965년, 그는 당대의 또다른 우상 비틀스와 만난다. 이 만남을 통해 비틀스는 소년의 달콤한 연애감정이나 실어나르던 록 사운드에 저항적 메시지를 싣게 되고, 그는 통기타 대신 전자기타를, 포크에 록을 받아들인다. 앨범 〈하이웨이61 리비지티드〉는 이런 변화와 절망적 몸짓의 결정판이었다. 앨범 중 ‘구르는 돌처럼’은 세계를 바꾼 문화작품 1위로 꼽힌다.(영국 음악잡지 〈언컷〉 선정)

실제로 하드록, 사이키델릭, 펑크 등 대중음악의 각 장르는 그의 저항 메시지에 세례받으며 진화했다. 미국 록 음악의 대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엘비스가 우리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면, 그는 우리 마음을 깨웠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올해로 65살. 최근 내놓은 〈모던 타임스〉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30년 만이다.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1997년) 〈러브 앤 세프트〉(2001년)와 함께 3부작으로 꼽히는 앨범이다. 두 앨범은 그래미상을 받았다. 그의 신화는 계속된다.

베트남전 확전 당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총을 만든 당신, 죽음의 비행기를 만든 당신, … 젊은이들의 피가 땅을 적실 때 당신은 맨션에 숨어 있었지.”(전쟁의 장인들) 딜런 신화는 베트남전, 9·11 테러, 이라크 침공 등 덕분이니 기막힌 역설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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