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4 19:52
수정 : 2006.10.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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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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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북한에서 춤은 아주 일상적이다. 국경일이나 기념일의 대규모 군중무용은 물론이고, 명절이나 주말, 마을 혹은 공작소 단위로 무도회가 열린다. 1인1기 문화교양 사업이 꾸준히 진행된 덕택에 시민의 춤 솜씨도 수준급이다. 대북제재 논의가 본격화되던 지난 17일 밤에도 평양에선 대규모 무도회가 열렸다.
북한 정권은 혁명의식을 고취하고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해 해방 이듬해부터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에 북조선무용가동맹을 두어 노동자 농민 춤 개발에 나섰다. 월북 무용인 최승희 등이 앞장섰다. 그는 1958년 한글 자모를 본떠 상체 10, 하체 10, 각도 8, 손 표정 4가지의 기본동작을 정하고, 이를 조합해 춤사위를 이뤄내도록 하는 ‘조선민족무용기본’을 확립했다. 한때 된서리를 맞긴 했지만, 80년대 이후 북한 춤의 기본으로 복원됐다.
북한 춤의 이런 한글 구조 탓인지 1970년대, 가수 김추자는 간첩 혐의로 서슬 퍼런 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거나 ‘추자의 춤에 부처님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이 나돌 때였다. 문제는 그의 현란한 춤에서 비롯됐다. 동작 하나하나가 북한과 교신하는 암호라는 것이었다. 냉전의 증오와 무지가 낳은 희대의 소극이었다.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의 형성과 변천’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백향주씨는 최근 비보이와의 ‘엉뚱한’ 합동공연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몸짓은 통합니다. 중요한 건 영혼이에요. 자기 안에 갇혀버린 영혼이 아니라 관계 맺고 소통 맺는 영혼이죠.” 그는 일본에서 조선 국적으로 태어나, 북에서 최승희 무용을 전수받고, 지금은 남에서 활동한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개성에서 춘 춤 때문에서 작살나고 있다. 춤을 열린 영혼의 소통으로 이해한다면, 어찌 늑대하고는 춤을 추지 못할까. 추자의 춤을 간첩의 암호로 여긴 소극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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