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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1 19:10 수정 : 2006.11.0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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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역사에 길이 남는 유물들을 남긴다. 진시황의 만리장성, 수 양제의 대운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남긴 어마어마한 대통령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운하는 남다른 점이 있다. 단지 폭군의 전시물에 그치지 않고 중국인의 삶과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운하는 원래 뤄양(낙양)을 중심으로 황허의 베이징과 양쯔강의 항저우를 잇도록 건설됐다. 당시 길이가 1782㎞였다. 그러나 남송 시절 황허 이북을 점령한 금나라 때문에 남북 운행이 중단됐다. 이후 원·명·청 등이 운하를 정비하면서 노선이 조금씩 바뀌어 1515㎞의 지금 모양이 됐다. 대운하를 수 양제가 모두 건설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그 이전부터 내륙의 주요 교통수단을 운하에 의지해 왔다. 이미 존재하는 작은 운하들의 물길을 잇고 정비해 대운하를 완성한 것이다. 수나라는 얼마 못 가 무너졌지만 대운하는 중국 발전의 기틀이 됐다. 양쯔강 유역의 풍부한 물자를 황허권에 실어날라 교역이 크게 활성화됐다. 지금은 절반 가량이 끊겨 제구실을 못하는 대운하를 중국 정부가 되살리기로 했다. 2010년까지 운하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운하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한반도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사실 국내에서 ‘대운하’란 말을 쓰기는 쑥스럽다. 조령 부근 20.5㎞만 뚫으면 된다. 중국인들이 1700㎞가 넘는 운하를 10여년 만에 만들어냈으니 우리는 남아도는 중장비만 동원해도 쉽게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운하가 역사이자 문화였고 삶의 젖줄이었는데 우리에게 운하는 무엇일까? 떠오르는 게 없다. 그가 내준 숙제를 풀려면 머리를 싸매야 할 듯하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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