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5 19:12
수정 : 2006.11.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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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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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정치인이나 재벌기업이 비자금을 만들 때 돈의 꼬리표를 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거액의 현금을 사과상자로 전달하는 방식은 고전적 수법이다. 다음이 헌수표다. 백화점 등에서 불특정 고객들이 사용한 10만원권을 모아 사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다. 수표 바꿔치기도 자주 이용됐다. 은행 창구에서 거액의 수표를 발행한 뒤 현장에서 다른 수표와 맞바꾸면 자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더 발전한 것이 양도성예금증서(CD)다. 현금이나 헌수표처럼 부피가 크지 않고 만기 전에 시중에 팔아 현금화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돈을 찾을 때 실명을 대야 하고 국세청의 자금추적이 들어올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무기명 채권이다. 채권을 사는 사람이 누군지 묻지 않는다. 만기 상환 때 실명 확인을 하지만 출처 조사가 없다. 검은돈의 조성과 전달 과정이 감춰지는 것은 물론이고 상속세나 증여세를 피하는 좋은 수단이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 발행된 증권금융채권,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고용안정채권이다.
그때 증권금융채권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와 아들 두명의 명의로 증권금융채권 상환자금 41억원이 유입된 것이다. 전두환씨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 재용씨는 외할아버지 이규동씨로부터 받은 167억원의 무기명 국민주택채권을 노숙자 이름을 빌려 현금화했다가 2004년 증여세 포탈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삼성도 2002년 대선자금을 전달할 때 국민주택채권을 이용했다. 사채시장에서 800억원어치를 사들여 385억원을 정치권에 전달했다. 나머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증권금융채권도 2조원 가운데 아직 1천억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나마 많이 줄어든 게 수천억원이니 과거 검은돈의 규모는 족히 수조원대에 이르렀을 것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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