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1 17:52
수정 : 2006.12.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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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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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가령, 고장난 텔레비전을 본 가전제품 가게 수선공은 다음과 같은 행동들을 할 수 있는데, 어느 경우에 ‘확신범’이 될까? 1)“이거 식은 죽 먹기지!”라는 확신으로 수리해 봤으나 완전히 망가뜨리고 말았다. 2)“잘 모르겠지만 … 이거겠지?”하고 만지작거리다가 부수고 말았다. 3)“수리불능 취급을 해서 새 제품을 우리 가게에서 사게 만들자”고 작심하고 일부러 망가뜨렸다.
어느 경우도 확신범은 아니다. 첫번째는 과실범, 두번째 역시 과실범인데, “망가뜨릴지도 모르겠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미필적 고의범이 된다. 세번째는 고의범이다. “나쁜 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또는 그 행위)”이나 “결과를 예상하면서 계략을 꾸미는 사람”은 확신범이라기보다는 고의범이다. 확신범은 “자신이 하는 일은 옳고 주변(사회)이야말로 그르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게 핵심 포인트다. 따라서 확신범이란 “텔레비전은 사회를 타락시키므로 텔레비전을 부수는 건 정의”라는 신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민주언론 시민연합과 토지정의 시민연대는 이른바 ‘조·중·동’ 세 유력 일간지 부동산 관련 사설·칼럼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신뢰 실추와 부동산 가격 폭등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며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두 단체는 절대다수 국민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자신들은 부동산 광고 유치로 재미보는 이들 신문이 시장 근본주의를 맹신하는 ‘확신범’이거나 그걸 ‘정론직필이라 믿는 자기최면 상황’에 빠져 있을 수 있다며, 자신이 뭘 잘못하는지도 모르는 확신범 쪽이 훨씬 위험하다고 봤다.
하지만 더 위험한 쪽은 ‘고의범’이 아닐까? 확신범은 자기 잘못을 깨닫는 순간 행동을 멈추거나 반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고의범은 오히려 개심 가능성이 거의 없고 도덕적으로 훨씬 더 저열하지 않은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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