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3 16:55
수정 : 2007.01.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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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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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어뉴린 베번. 생소한 그가 눈길을 끈 것은 연말 영국의 보수당이 선정한 ‘위대한 12인의 영국인’에 포함됐을 때였다. 언론에 따라 첫 이름이 ‘어뉴린’ 혹은 ‘나이’로 보도돼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크롬웰, 뉴턴, 그레셤 등 교과서를 통해 익숙해진 이름들과 함께 나란히 올라있었다.
베번은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영국의 국민건강 서비스(NHS)를 처음 입안하고 집행한 정치인이다. 1948년 전후 복구도 버거운데, 영국의사협회는 물론 소속한 정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상진료 무상치료를 정착시켰으니 영국인으로선 긍지로 삼을 만하다. 그는 보건부 장관 재직 때 이 밖에도 가족수당법, 국민보험법, 산업재해법, 국민부조법 등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했다. 영국판 현대 복지국가 모델을 연 인물인 셈이다.
‘위대한 12인’에서 베번보다 더 주목되는 것이 보수당의 선택이었다. 베번은 남부 웨일스의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력은 중퇴가 고작이었고, 13살부터 노동판을 전전해야 했다. 그 속에서 영국의 가장 전투적인 노동운동가로 성장했고, 계급혁명의 불가피성을 확신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왕정은 물론 기존 질서 유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보수당으로서는 20세기 중반 가장 불편한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보수당과 노동당이 함께 추진한 전시 거국내각조차 반대했다. 전시 내각을 이끈 보수당 윈스턴 처칠 총리(수상)의 가장 맹렬한 비판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베번은 60년 작고할 때까지 노동당 좌파(베버니스트)의 수장이었다.
그런 베번이 포함된 12인 명단에는, 놀랍게도 보수당이 자랑해 온 처칠이나 대처 전 총리는 빠져 있다. 보수당의 관용과, 평가의 엄정함이 놀랍다. 상대방 업적이라면 무조건 깎아내려 온 우리의 보수 정당들이라면 어떠했을까.
곽병찬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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