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25 17:17
수정 : 2007.01.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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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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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보건학에서 ‘생존자의 오류’란 말이 있다. 평생 담배를 피웠는데도 장수하거나, 석면공장에서 수십년 일하고도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담배나 석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미 죽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공사례에만 집착한다.
최근 지하철 승강장에서 발견된 석면은 이런 오류를 일으키기 쉬운 특징을 지녔다. 노출되고 피해가 나타날 때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어릴 때 석면공장 옆에서 뛰놀던 소년이 중년에 덜컥 치명적인 암에 걸린다. 석면에 노출된 사람들을 수십년 지켜보지 않는다면 그 피해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늑막 또는 흉막에 생기는 악성종양인 중피종은 석면에 노출된 지 약 40년이 지나 발생해 보통 1년 안에 목숨을 앗아간다. 1960~70년대에 석면을 많이 쓴 유럽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사망자가 나오는 참이다. 유럽연합은 앞으로 35년 동안 약 25만명이 중피종에 걸릴 것으로 추정한다.
석면은 예방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만일 중피종과 석면의 관련성이 입증된 1960년대에 사용이 금지됐다면 미국에서만 20억달러에 이른 손해배상 비용과 수많은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석면이 ‘마법의 광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성질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70년대에 광물면 등 대체품이 나와 있었다. 석면 카르텔 탓에 석면 값은 너무 쌌고 대체품은 시장에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서 규제가 심해져 석면값이 폭락한 80년대 후반부터 석면을 본격적으로 수입해 쓰다가 90년대 말부터야 줄어들었다. 그 영향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석면처럼 잠복기가 긴 유해물질이 주는 교훈은 ‘해롭다는 증거가 없다’를 ‘해가 없다는 증거’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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