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2 17:23
수정 : 2007.03.1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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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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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함께 살면서 자식을 넷이나 낳은 독일의 친남매가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법 폐지를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소식을 전한 영국 신문 <가디언>의 기사를 보면,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절인 1810년 근친상간 금지 법률을 폐지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포르투갈, 터키,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도 근친상간을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쯤 되면 근친상간이 보편적인 금기사항이라는 믿음이 흔들릴 만하다.
근친상간이 대체로 금지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금기처럼 종교나 문화와 미묘하게 얽히는 양상을 보인다. 영국 브리스틀대학의 엘리자베스 아처볼드 교수가 쓴 책 <근친상간과 중세의 상상력>을 보면, 유럽에서 근친상간이 글에 본격 등장한 때는 12세기다. 이후 많은 문학작품들이 이 문제를 다뤘고 논의 양상도 지금보다 훨씬 공개적이었다. 당시는 근친상간을 흔히 인간의 원죄와 연결지었지만 예외도 있다. 그들이 근친상간을 연상시킨다고 여긴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관계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며 딸이기도 하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반면 악의 화신인 적그리스도는 “악마와 그의 딸이 근친상간해 태어났다”고 묘사된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유대인과 근친상간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미국 역사학자 샌더 길먼은 같은 민족끼리만 결혼하는 유대인의 행태를 근친상간과 다름없이 보는 시각이 꽤 퍼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일부 학자들은 유대인이 결혼 습관 때문에 정신병 따위의 질병을 앓는 걸로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근친상간 금기가 곳곳에서 도전받지만, 이는 대체로 친남매나 사촌 간 성행위 따위에 국한된 이야기다. 부모와 자식, 특히 아버지와 딸의 성행위 대부분은 추악한 성폭력일 뿐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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