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4 17:42
수정 : 2007.03.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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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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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하여 잘 길들이면 가까이하여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 한 자의 꺼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어, 이를 건드리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중국 전국시대 한나라 사람인 한비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헤아려 ‘세난’(說難)편을 지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뜬금없이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역린’은 여기서 나온다. 한비는 역린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남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은 나의 지식이나 표현력이 모자라기 때문은 아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그의 마음에 맞추기 힘들다는 데 있다. 명예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 이익을 거론하면 속물이라 따돌림을 당할 것이고, 이익을 구하는 자에게 명예를 거론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외면당할 것이다. 겉으로는 명예를 구하는 척하면서 기실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 명예를 거론하면 겉으론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내심 멀리할 것이고, 반대로 이익으로 설득하면 그 계산만 받아들일 뿐 사람은 버릴 것이다.”
한비는 당대의 석학 순자 밑에서 제왕의 도리를 배웠다. 그와 동문수학했던 이사는 대국 진의 승상이었다. 진에 시달림을 당하던 한은 한비를 보내 진왕을 설득하려 했다. 진왕도 한비의 명성을 알고 있던 터라 흔쾌히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비는 이사의 모함으로 옥에 갇힌 바 되었고 죽임까지 당했다. 제왕의 도에 능통했고 설득론까지 지었던 한비가 동문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해 유세도 한 번 못하고 비명횡사했으니 참으로 역설이다.
역린은 위(임금)에만 있지 않다. 옆(동료, 측근)에도 있고 밑(백성)에도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의 역린이다. 임금의 것을 건드리면 개인이 죽임을 당하지만, 국민의 것을 건드리면 나라가 뒤집어진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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