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5 17:27
수정 : 2007.04.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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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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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얼마 전 서양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저작 전집 번역 작업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철학 연구자 집단인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 첫 결과물 세권이 나오자 ‘우리도 드디어 전집을 갖게 된다’는 식의 기사들이 등장했다. 책을 낸 출판사 사장이 “사실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말로만 들어봤지 맛도 못 봤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한 기사도 있다.
그런데 정작 번역 당사자들은 곤혹스러워했다. 정암학당 홈페이지에는 이런 알림이 있다.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 중 학당 전집 출간 이전에 플라톤 대화편 원전 번역본이 없는 양 보도된 것은 전혀 잘못된 사실입니다. 발간사에서 밝힌 것처럼 이미 우리나라에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박종현 선생님 등의 노력으로 상당수 번역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성취도 없었을 것입니다.”
과도한 평가는 플라톤이라는 큰 철학자, 희랍어 원전, 전집이라는 요소가 상승 작용한 결과인 듯 하지만, 아무래도 강조점은 원전에 있다. 전집 출간 문제라면 계획일 뿐이니 너무 강조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프랑스어 전집(플라마리옹판)은 출판계약부터 완간까지 22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 전집의 번역 원칙 한가지는 풍부한 주석을 붙이는 것이다. 희랍어 텍스트가 훼손됐거나 전해내려오는 판본들이 서로 달라 생기는 문제 따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를 봐도 정확한 원전 텍스트를 확립하는 것 또한 연구 활동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원전’만 지나치게 강조할 게 아니다.
게다가 원전 번역이라 해도 기존 번역본을 도외시하긴 어렵다. 고전 번역은 그동안 연구 업적이 축적된 결과이기에, 다른 번역본 검토도 연구작업의 일환이다. 힘든 작업에 나선 학자들을 돕는 길은 과잉 관심이 아니라 결과물을 꼼꼼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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