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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4 18:04 수정 : 2007.05.14 20:56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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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왕(재위 서기전 614~서기전 591)이 신하들과 회의를 했는데, 어떤 신하도 자신에 미치지 못하자 근심에 잠겼다. 신하 무신이 까닭을 물었다. 장왕은 “옛말에 자기보다 나은 스승을 얻으면 천하를 다스리고, 동지를 얻으면 패업을 이루며, 자기만한 이를 얻으면 나라를 겨우 지키고, 자기만 못한 이들밖에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신하들 가운데 나를 넘어선 자가 없으니 나라가 망해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순자> ‘요문’편에 나오는 얘기다.

당태종 이세민(재위 626~649)은 학문을 좋아했고 논변에 능했다. 그는 폭넓은 문헌을 인용하며 신하들의 의견을 반박하길 즐겼다. 이에 재상 류계(?~645)가 상소를 올렸다. “폐하께서 자비로운 얼굴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더라도 신하들이 감히 함부로 말을 못할 터인데, 하물며 임금께서 지혜와 논리와 옛일을 동원해 신하들의 말을 일일이 논박하시니 신하들이 어찌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이세민은 류계의 상소에 서면으로 답했다. “논쟁을 벌이면 번뇌만 는다. 남을 얕보고 교만해지는 게 다 여기서 생기는 듯하다. 지금 그대의 곧은 말을 들으니 마음을 비워 허물을 고치겠노라.” 사마광의 <자치통감> ‘당태종 정관 18년’조에 나오는 이 얘기는 이세민의 고구려 침략(645년)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옹고집 성품을 바꾸지 않은 그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고구려 침략에 나서 큰 망신을 당하고 돌아왔다. 류계는 645년 모함을 당해 이세민의 명령으로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중국사에서 가장 억울한 죽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열린우리당 정동영·김근태 두 전 의장과 논박을 주고받았다. 청와대 안에 노 대통령보다 나은 가신이 있는지 의문스럽고, 논쟁을 일삼는 대통령의 성품이 근심스럽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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