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4 17:16
수정 : 2007.05.2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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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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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반지하 쪽창 틈에 비친 목련꽃이 예뻤던 1986년 봄. 땀과 최루탄에 찌든 학생회 방에서 <젊은 예수>라는 노래집을 본 적이 있다. 겉장이 뜯기고 분량의 반쯤은 떨어져나간 그 책은 있는 듯 없는 듯했고,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아무나 기타만 들면 노래가 됐고 구호가 됐다. 70년대 합법적인 공간을 찾기 어려웠던 반독재 민주화 운동세력이 찾아간 곳은 교회였다. 그 둥지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기독청년협의회가 묶어낸 노래책이 <젊은 예수>였다.
필자보다 네 학번 앞선 김광석은, 나를 ‘스쳐간’ <젊은 예수>에 꽂혔다. 대학 1학년 어느 즈음 선물받은 그 책은, 짧았던 그의 노래 인생을 결정했다. 그 책은 어눌한 김창완과 텁텁한 김민기를 만나게 했다. 그렇게 그는, ‘동물원’이 됐고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를 만났다.
노찾사가 오늘부터 사흘간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한다. 87년 10월 서울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연 첫 합법 공연 이후 20년 만이고, 6월 항쟁 20년 만이다.
이번엔 권력의 빈자리를 꿰어찬 ‘자본과 물신’에 말을 걸고 싶은 것일까? 20년 전 거리를 메웠던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싶을 것일까? 여전히 인간적 가치에 목마르고, 세상은 바뀌었다지만 아직 노래로 할 얘기가 많단다.(한동헌 대표)
낡은 노래책에 있는 노래들을 끄집어내야겠다고, 그 노래들은 아직 유효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소통 방식은, 아직 노래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말소리가 더 어울리는 소극장 공연을 좋아했던 김광석의 감성적 소통방식이 그리운 요즘,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노찾사는 여전히 반갑다.
홍세화가 말한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말만 배설해 버리는 댓글 세상”에서. 김훈이 말한 “말을 할수록 단절만 완성해 가는 비극적 풍경” 속에서.
함석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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