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4 17:32
수정 : 2007.06.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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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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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3년 전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였다. 김근태 의원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과 정부 청와대가 불협화음으로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고 말했다. 이튿날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이라는 면박으로 일축했다. 노 대통령은 2년 뒤 원가 공개 쪽으로 돌아섰다. 그제야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계급장 뗀 토론회’를 아쉬워했다.
주장의 시비, 정책의 당·부당, 죄의 유무를 따지는 데 토론만큼 유효한 수단은 없다. 고대 그리스에선 시민들이 토론으로 정책·가치·위법 여부를 가렸다. 당시 토론엔 엄격한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토론자에겐 계급장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로마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에 제정으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권력자가 토론을 기피한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서북부 지역을 통치하던 그리스계 밀란다 왕은 현자인 나가세나에게 불교의 핵심 사상을 주제로 토론할 것을 제의했다. 나가세나는 이렇게 말했다. “현인의 토론엔 설명이 있고, 해설이 베풀어지며, 시정이 있고, 다시 시비 구별이 이루어지며, 추궁과 면박이 있어도 성내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왕자(王者)의 토론에선 왕이 한 쪽의 의견을 택한 뒤, 그것과 견해를 달리하면 ‘저 자에게 벌을 주라’고 명합니다. 어떤 토론을 원하십니까.” 그리스의 토론문화 전통 탓인지 왕은 현인의 방식을 택했다. 두 사람은 윤회 무아 업 등 불교의 핵심 사상을 두고 격의없이 토론했고, 그 내용은 밀란다왕문경으로 남았다.
프레스룸 통폐합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공개토론을 제의했다. 그런데 이튿날 금융감독위원회가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미 ‘왕의 결론’은 나 있었다. 누가 그런 토론에 응할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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