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380㏄ 채혈병 속으로 비루한 피가 쪼록쪼록 떨어진다. 피는 밥이다. 채혈실 밖에는 뱃속이 쪼르륵거리는 빈대꾼들. 비루먹은 개 같다. 돈 외에 따로 주는 빵 둘을 노린다. 이틀치 밥값을 손에 쥔 ‘쪼록꾼’은 서대문 네거리 옛 적십자병원을 나서 전라도 밥집으로 향한다. 헌혈이 일반화되기 전 매혈꾼의 모습이다. 최근 〈도장골 시편〉을 펴낸 김신용 시인이 자전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에서 토해낸 증언 혹은 각혈이다.지난주말 〈엠비시 스페셜〉은 르포를 통해 중국의 양극화를 다뤘다. 중세 유럽의 영주가 농노의 딸에게 ‘초야권’을 행사하듯, 부자들은 엄청난 돈질로 어린 여성의 ‘첫 피’를 산다. 매춘은 매혈이다. 농민들은 피를 팔아 자식 교육을 시킨다. 그러다 에이즈에 감염된 이가 200만명이라고 추산한다. 농민들을 감금해 매혈을 강요하는 ‘흡혈조직’도 있다. 개혁개방을 주창하면서 한편으로 양극화를 경계했던 덩샤오핑은 무덤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모기는 잘 안다/ 몸집은 작지만 육식동물/ 그러나 배만 잔뜩 부르면 그 뿐/ 피를 은행에 저장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는 〈모기는 잘 안다〉에서 자본의 욕망에 시의 빨대를 꽂았다. 모기는 자본보다 정직하다고. 1천만원만 있으면 지옥 같은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대부업법에선 이자 상한선을 연 66%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사금융의 평균 이자율은 연 197%에 이른다고 한다. 도망갈 궁리도 하고 자살할 맘까지 먹는다. 추심의 협박에 숨을 곳이 없다.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모기소리에 그친다. 대부업 텔레비전 광고 소리는 그 애원마저 삼켜 버린다. 정부는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흡혈 빨대’를 쥐게 했다.
철 이른 모기가 발호하고 창궐한다. 사육제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한밤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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