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18 17:28
수정 : 2007.06.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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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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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본보기로 삼았던 듯하다. 수준은 현저히 다르지만, 경기침체, 거대 야당과 자본가·보수언론의 무자비한 공격 등 처한 상황은 비슷했다. 루스벨트는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노 대통령은 친북좌파로 매도됐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고 동원한 수단도 비슷했다. 루스벨트는 라디오 프로그램 ‘노변정담’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으며, 노 대통령은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언론의 악의적 보도를 루스벨트가 고소했던 것처럼, 역시 법률가인 노 대통령도 법적 수단을 자주 동원했다.
최고 권력자의 소송은 그때나 지금이나 탐탁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금주법’을 폐지한 탓인지 루스벨트는 주정뱅이라는 험담에 시달렸다. 신뢰를 떨어뜨려 결국 뉴딜정책을 흔들고자 기득권 세력이 지어낸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한 잡지가 만평 등으로 그를 형편없는 주정뱅이로 묘사하자 손해배상 소송을 낼 것을 지시한다. 비서들은 대통령의 소송에 대한 비난을 우려해, 사장과 기자를 불러 따끔하게 혼내주고 말자고 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오히려 그것이 권력남용의 소지가 있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소송은 ‘예상대로’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대통령의 승리를 전제로 비난의 칼을 갈던 야당이나 언론들이 입을 떼지 못했다. 거액일 줄 알았던 루스벨트의 요구액은 단돈 1달러였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취임 6개월 만에 언론사 등을 상대로 30억원 손배소를 제기하는 등 여러 차례 소송 주체로 나섰다. 최근엔 한나라당 경선후보 이명박씨의 참모를 고소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결정을 두고서도 헌법소원을 들먹였다. 물론 대통령이라고 명예나 기본권과 관련된 권리 구제를 유보당해선 안 된다. 그러나 금도가 있다. 기품이다. 루스벨트는 진실만 원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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