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5 17:44
수정 : 2007.06.25 17:44
유레카
지척에 남쪽 조국이 있었다. 판문각의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림수경 학생’과 문규현 신부는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일본, 미국, 독일 등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우리들은 그들의 안전귀환을 바라며 투쟁했다. 6일 동안 물과 소금만 먹었다. 1989년 반제, 반전, 평화를 내세운 평양축전은 일본에서 자란 내가 비로소 조국과 만나는 계기였다. 지금 오사카에서 세 아이를 조선학교에 보내는 여성 얘기다.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에는 교토 조선학교와 일본학교 고교생 간의 패싸움 장면이 나온다. 10대의 억눌린 열정과 불안을 넘나드는 카메라는, 다시 차별 속에서 살아온 재일 조선인들의 울분과 고통을 부감한다. 이주와 이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의 낮은 울음이 아리랑 가락처럼 젖는다. ‘치마저고리’ 여학생 경자를 사랑한 일본 학생 코우스케는 “리므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 남쪽 땅에 가고파도 못 가니…”라고 노래한다. 조선학교가 없었다면 어찌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불렀을까. 〈우리 학교〉는 김명준 감독이 홋카이도 조선학교 교사·학생들과 3년 남짓 동고동락하며 찍은 다큐멘터리다. 일본 우익들의 탄압 속에서 조선학교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우리 학교’들은 총련만의 학교, 조선 국적 자녀들만의 학교가 아니다. 겨레의 말글 그리고 말글에 녹은 얼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민단 동포의 자녀들도 다닌다고 한다.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곧 폐쇄하고, 핵 불능화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북-미 관계와 더불어 남-북 관계도 풀려갈 조짐이다. 총련 중앙본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다. 동포와 조선학교한테 이 10층 건물은 10층 이상이다. 북쪽 조국 말고, 남쪽 조국과 동포는 도울 길이 없을까.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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