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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1 18:01 수정 : 2007.08.01 18:01

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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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인질로 잡고 있는 한국 민간인을 잇달아 살해함으로써 공포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탈레반을 단순 테러 집단으로 볼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애꿎은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만큼은 명백한 테러 행위다.

조너선 바커의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를 보면 테러리즘이라는 말은 프랑스 혁명기인 179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자코뱅 정부를 ‘대리인을 내세운 국가 테러리즘’ 사례로 부각시켰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 용어는 비난을 담고 있었지만,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테러리즘이라고 부른 집단도 있었다. 19세기말 러시아 무정부주의자들은 정부 관리를 암살하면서 스스로 이를 테러리즘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 이후 테러리즘은 흔히 가장 강도 높은 비난 용어로 쓰이게 됐지만, 널리 합의된 테러의 기준은 없는 형편이다. 예컨대 이라크 등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게릴라식 공격을 미국은 테러로 규정할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은 외세에 맞서는 저항전쟁으로 볼 것이다. 그러므로 이해 당사자 모두 동의할 수 있도록 테러리즘에 관한 정의를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체로 합의를 이룰 가능성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커는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국제테러대책연구소 사무총장 보애즈 가너의 정의를 꼽는다. 가너는 <테러리즘 규정하기>라는 책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민간인 또는 민간 시설에 대해 폭력을 쓰거나 폭력 사용을 위협하는 행위’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한다. 정치적 목적, 민간인, 폭력이 필수 구성 요소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테러리즘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테러와 다를 게 없는 전쟁 범죄를 똑같은 강도로 비판하고 테러의 원인까지도 성찰한다면, 테러리즘 비판은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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