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15 18:32
수정 : 2007.08.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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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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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최근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사건이 잇따라 불거졌다. 학벌 위주 사회가 낳은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력 위조의 비윤리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학력 위조는 무엇보다 기만 행위, 특히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상지대 최종덕 교수(과학철학)의 글 ‘자기기만의 진화론적 해석’(<시대와 철학> 2007년 1호)을 보면, 기만 행위는 영장류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꿀벌과 비슷하게 생긴 파리, 뱀을 쏙 빼닮은 중남미 지역의 나방 애벌레처럼 자기 방어를 위한 기만(위장)을 생태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영장류만큼 기만에 능한 생물은 없다. 그리고 자기기만은 인간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 이유를, 미국의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언어에서 찾는다. 언어 사용이 잘못된 정보의 확장과 분화를 통한 기만적인 의사소통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은 기만과 자기기만을 일종의 적응행위(적응진화)로 본다. 살아가자면 남을 속이는 일이 필요한데, 남을 잘 속이려면 자신의 행위나 말을 진짜처럼 믿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기만은 기만의 구조가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진 적응 결과다. 이렇게 보면 자기기만은 집단의 종 유지를 위한 진화의 높은 단계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에 이런 측면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학벌 만능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학력을 위조하고 위조된 학력이 진짜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걸 상상해 보면, 이런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기만을 적응행위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기만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마저 속일 수 있지만, 동시에 윤리 의식도 지니고 있다. 생존과 적응 능력만큼이나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 또한 인간의 소중한 능력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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