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24 18:16
수정 : 2007.10.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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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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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낭인은 직업과 주소 없이 떠도는 부랑자를 말한다. 일본 에도시대 때 영지나 봉록을 잃고 방랑하는 사무라이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조직을 이룬 게 야쿠자의 기원이라고도 한다.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때까지 일본 대륙 침략의 주변에서 활동한 ‘대륙 낭인’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애국지사나 재야 정치인으로 대접받았다. 조선주차군 헌병사령관인 아카시는 낭인을, 수입이 없으면서도 국사를 위해 분주한 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강창일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
물론 이들도 주변인이다. 대부분 정치적 지향은 있되 메이지유신에 반대한 지역 출신이라는 등 여러 이유로 정치권력의 핵에 진입하지 못한 사족 집안 출신들이다. 이들은 일본 내 입신출세가 불가능해지자, ‘일본의 대륙 팽창’을 주장하며 조선이나 중국으로 건너간다. 우리에겐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로 알려졌지만, 이 말고도 천우협이라는 낭인단체는 동학 농민전쟁 때 농민군을 지원하려고 접촉을 시도한 일이 있고, 흑룡회는 일진회를 조종해 한-일 병탄의 숨은 주역이 되기도 했다. 중국 신해혁명에 직접 뛰어든 낭인도 있고, 만주 마적의 두령이 되어 만몽국 건설을 시도한 이도 있다. 기자나 문필가로 대륙 팽창 여론 전파에 나서기도 했다.
요즘 ‘로스쿨 낭인’이란 말이 나온다. 낭인이 재수생이나 실업자라는 뜻이 있는 것을 따, 로스쿨 졸업 뒤 변호사 시험을 재수·삼수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며 걱정하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몇 해씩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고시 낭인이 2만명 이상이고, 7·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 낭인은 20만명이 넘는다. 로스쿨 낭인이 이보다 많아질 것 같지는 않다. 또 로스쿨 낭인이나 변호사 낭인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들이 익힌 법률적인 사고방식은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갈 무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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