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31 18:16
수정 : 2007.10.3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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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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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뮤지컬 에비타의 주인공 에바 페론. 그가 아르헨티나의 성녀로 추앙받는 것은, 단지 미모의 대통령 부인이었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나이 열다섯 때부터 생존을 위해 단역배우로 전전했던 밑바닥 삶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는 스물넷에 후안 페론을 만나 1952년 세른넷 짧은 생을 마칠 때까지 억압받는 노동자·빈민·여성의 헌신적인 대변자였다.
2차대전 종전 이후 군사정권의 실력자였던 후안 페론이 미국의 압력으로 연금당하자 에바 페론은 목숨을 걸고 노조를 설득해 총파업을 끌어냈고, 그를 정치적 위기에서 구출했다. 후안 페론이 46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외국자본 추방, 기간산업 국유화 등 페론주의를 펼쳐나갈 때 에바는 노동자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외치며 전국을 누볐다. 타고난 미모와 소외 계층에 대한 헌신과 애정 덕분에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페론주의가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가면서 나라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외 계층 배려는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선심성 정책에 머물렀다. 또 에바의 이름을 딴 학교·병원·재단이 곳곳에 세워졌다. 빈약한 재정으로 이탈리아·프랑스 등 외국 재해민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권력기반이 흔들리면서 개인적인 불행이 찾아왔다.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후 후안 페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55년 군부 쿠데타로 페론주의는 종말을 맞았다.
현직 대통령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아르헨티나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뒤에 에바 페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화려한 외모와 사치스런 생활이 그렇고, 인플레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 지원을 인기의 발판으로 삼는 점도 닮은꼴이다. 그 역시 에바 페론처럼 미모와 인기만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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